1917년 2월 6일

다년간 면장을 하며 세금 횡령
거금 1천 5백여 원 갖고 도망

 

   
 

“경기도 진위군 북면장 이유곤(京畿道 振威郡 北面長 李裕昆, 57)된 자는 동 면장으로 다년 근부하던 바, 지난 륙일에 우연이 악의를 먹고 세금 받은 현금 일천 사백 육십 원을 휴대하고 부지 거처로 도주하였는데, 급보를 받은 동군 경찰서에서는 대활동을 개시하여 엄중히 수색 중이라더라.”(『매일신보』 1917년 2월 11일)

돈은 ‘요물’이다. 왜 그런가. 돈이 없으면 생활이 곤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돈이 좀 있으면 이를 남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돈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오랫동안 공직에 있어 청렴하다고 평가를 받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돈을 횡령하고 사라진다면, 그 배신감은 말할 수 없으리라 짐작되고도 남는다. 고려 말기 유명한 무신으로 알려진 최영은 ‘돈을 돌과 같이 보라’고 한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돈이 최고인 모양이다. 1917년 2월 평소 정직하고 인품이 있으며 지역 유지인 면장이 공금을 떼먹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1917년 당시 진위군 북면 면장은 이유곤이었다. 그는 한말부터 지역유지로 면장을 맡아보고 있었다. 1908년 8월 5일자 <황성신문>에 의하면, 진위공립보통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진위향교를 수리하는데, 당시 금액으로 5환圜을 기부한 바 있다. 진위공립보통학교 교사校舍로 진위향교를 활용하기로 함에 따라 지역유지들이 그 비용을 마련하기로 하고 후원금을 모았던 것이다. 1908년 당시에는 행정구역 가편 전이었기 때문에 진위군 군내면 면장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의 <조선신사보감>에 의하면 이유곤은 백사 이항복의 9세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사에 태만하지 않아 여러 사람들이 덕을 칭송함”이라고 인물평을 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유지이며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던 이유곤은 1917년 2월 당시까지도 면장으로 있었다. 지금이야 세금을 은행이나 세무서에서 취급하지만 당시만 해도 면장들이 세금을 받았다. 이유곤은 주민들로부터 거두어드린 세금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거금 1460원에 달하였다. 그런데 돈에 눈이 먼다고, 이유곤은 이 돈을 가지고 도주하였다. 급보를 받은 경찰서에서 대대적으로 검문 수색을 하였지만, 이유곤은 종적을 감춘 후라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주민들은 ‘세상에 믿을 놈 없다’고 한탄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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