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이 티창, 가난이 싫어 선택한 코리안 드림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한유진(여·31·평택시 원평동 삼성아파트) 씨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부리나케 원평동주민센터로 달려왔다. 기자와 마주앉은 그녀는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환한 미소가 썩 어울리는 얼굴이다.
이제 한국생활 7년째에 접어드는 베트남 댁에게 유창한 한국어를 듣기를 바란 건 무리였을까? 그녀가 찬찬히 하는 말을 들어보면 상대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고 작은 목소리에 약간 어눌하고 더듬거리기도 했지만 이 한마디는 확실히 전달되어왔다. “원래 제 이름은 부이 티창, 한국처럼 앞이 성(姓)입니다”
그녀는 1981년 수도 하노이 변두리 시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지만 몹시 가난했다. 한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진학하는 대신 신발공장에 다니며 집안 살림을 도와야만 했다. 그래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국제결혼. 2006년 한국말도 전혀 모른 채 13년 연상의 한국남성과 결혼을 했다.
물설고 낯설은 이국땅. 더군다나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그녀에겐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자상한 남편 덕에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이국생활을 적응해 나갔다.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도 따뜻하게 대해 주시며 한국의 문화와 언어, 음식 만드는 법까지 가르쳐 주시곤 했다. 한유진이라는 예쁜 한국이름도 시어머니의 성을 따서 지은 것이다.
지금도 유진 씨는 시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고 있고 두아이의 어머니로서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언제나 든든하던 남편이었지만 실직으로 어려웠던 때도 있었다. 신혼 초부터 한동안 근무하던 회사가 경영난으로 도산해 2년 전 직장을 잃었던 것. 집에서 아기만 기르고 있었던 한 씨는 뭘 해야 좋을지 앞이 캄캄했다. 한국말도 서툴고 잘 할 줄 아는 일도 없었던 터라 더더욱 힘겨웠다. 뭐라도 할 각오였지만 그녀도 남편도 일자리를 쉽게 구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마음 고생을 하던 중 남편이 평택에 일자리를 얻어 지난해 안산을 떠나 이사를 오면서 그녀의 평택살이가 시작됐다.
새로 정착한 집 근처에 동주민자치센터가 있었는데, 다문화가족을 위한 한글교실과 한국요리 교실을 열고 있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등록한 유진 씨는 동주민자치센터를 부지런히 드나들며 진정한 한국인이 되어갔다.
게다가 좋은 일자리도 소개받았다. 작년 8월 오성면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 취직한 것이다. 그녀가 맡은 일은 제품을 검사하고 불량품을 가려내는 것이어서 쉽게 익힐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근로자 중에는 베트남 출신 동포도 있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고, 동료들과 사장님까지 모두 따뜻하게 잘 대해준 덕에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아들 동국(6)이와 딸 희진(4)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맞벌이 부부가 된 후 부터는 생활의 여유도 조금씩 생겼다. 12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 그녀는 적금도 들고 고국의 친정에도 송금한다. 유진 씨는 2009년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고국에 올해는 꼭 가고 싶다. 처음 몇 해 동안은 1년에 1번 정도 다녀왔으나 최근 3년 사이 사는 게 너무 힘들다보니 다녀올 형편이 되질 않았다. KBS로부터 왕복항공료를 지원받기 위해 다문화가족들을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에 신청한 적도 있었으나 하늘의 별 따기였다. 신청자가 워낙 많다보니 TV에 나갈 기회를 얻지 못한 것. 그래서 작은 돈이나마 아껴 귀향 여비도 매달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
두 아이들은 시어머니가 갓난아기 때부터 늘 봐주시면서 말을 가르쳤기 때문에 다문화 자녀들이 겪는 언어장애가 없다. 지금은 하루 2시간씩 동화책을 읽어주며 두 아이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고교생 덕에 안심한다.
이제 된장도 미역국도 잘 끓이는 한국여자가 되어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는 유진 씨가 유독 힘들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베트남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겨울철 추위다. 하지만 그녀가 6번의 모진 겨울을 보내면서도 잘 견뎌내고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과 따뜻한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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