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설가 이청준의 고향인 장흥에 들렀다가 그 마을 이장님의 오래된 방앗간 내부를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장님은 방앗간 문의 빗장을 열더니 “이곳에는 낮에도 별이 뜬다”며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더군요.

낡아서 곳곳에 작은 구멍이 뚫린 양철 벽 사이로 햇볕이 스며들었고 어두운 실내는 정말 별이라도 뜬 것처럼 사방이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바깥에서는 태양의 일부로 인식되던 빛이 갑자기 존재감을 드높이며 별이 된 것이지요. 그것은 방앗간 내부의 어둠이 배경이 되어준 덕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툇마루에 나와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우면 밤하늘의 별이 참 크고 밝게 보였습니다. 국자모양의 북두칠성, 더블유 모양의 카시오페이아를 찾다보면 어느새 슬슬 졸음이 몰려오곤 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별 구경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밤이 아무리 깊어져도 별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엔 을씨년스러운 가로등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별은 이제 동요에나 등장하는 것이 되었고, 작은 별들이 무리를 이루어 강처럼 흐르던 은하수도 어느새 옛말이 되었습니다. 알퐁스 도테의 단편소설 <별>에서처럼 누군가와 함께 별을 보며 아름다운 꿈을 꾸고, 별자리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낭만적인 시간들을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이상 맛보지 못하겠지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별은 언제나 하늘에 있습니다. 낮 시간엔 태양이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별은 태양이 수많은 생명을 키울 수 있도록 주인공의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다 사방에 어둠이 깔리면 그때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지요. 그때부터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둠이 되어 별의 배경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별은 배경을 잃어버렸습니다. 밤이 되어도 태양을 흉내 낸 인공의 빛들이 앞 다퉈 빛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별을 보며 꿈을 꾸고 사랑을 노래할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인간의 이기와 욕망이 별을 볼 수 없게 만들면서 인간의 꿈과 희망마저 앗아간 셈이지요.

사람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이 곳곳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은 분명 빛나는 별입니다. 주변에 있음에도 그들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아무도 그들의 배경이 되어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도 나도 빛이 되고 싶어 하니까요.

돈과 권력과 명예 등 자본주의의 힘으로 각종 빛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배경이 되는 법도 잊어갑니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희망과 사랑을 노래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별들의 소소한 행복입니다.

배경이 된다는 것은 결코 나를 낮추거나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별을 통해 꿈을 꾸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행사장에서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 집회가 끝난 서울 도심의 거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는 뉴스를 보며 문득 작은 별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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