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탁의 생애와
그를 보며 배우고
반성해야 할 언론인

 

   
▲ 윤해린/신한고 1학년
yunhaerin@naver.com

양기탁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언론인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양기탁은 1902년 개혁당 조직 운동에 가담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제가 조선에게 삼림과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자 이에 반대하는 보안회운동에도 참가했다. 그 후 영국인 기자 베델과 만나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했다.

국채보상운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의 부당성을 알리는데도 앞장섰다. 국한문판, 영문판, 순한글판 등 세 종류의 신문을 발행했으며, 발행 부수도 1만부 이상을 기록하는 등 대중의 큰 지지를 얻었다. 그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제와 이토를 공격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의 신문사설을 썼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논설을 즉각 개제했고, 이를 영어로 변역해 ‘코리아 데일리뉴스’라는 영문판을 별도로 발행해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민족의식을 알렸다. 계속되는 양기탁의 언론 활동은 한말 국권회복운동의 기점이 되었다. 양기탁은 일제 통감부의 탄압 대상이 되었고, 결국 국채보상금 횡령이라는 누명을 쓰고 구속되었다. 그 뒤에도 그는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신민회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기지를 창건하며 남은 생도 조국을 위해 힘썼다.이런 그를 보면서 현재 외면 받고 있는 많은 언론과 뉴스미디어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없어서 못 팔았을 정도로 그들의 신문은 신뢰성과 관심이 높았다는데, 지금의 언론은 정부와 기업의 입김이 들어간 편파적인 가짜뉴스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진정한 언론을 보여준 양기탁의 업적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어느 누구도 아닌 대중을 위해 만든 언론이라는 점, 언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것, 우리가 당하고 있는 부당한 현실을 세계에 알리며 우리의 독립과 해방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자 한 것, 후에 있을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롭게 비판하고 사실을 전한 것,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직접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애국심을 보여준 것 등을 현재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이 보면서 조금 더 나은 한국의 언론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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