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으면
지역 명소로 귀환한다

도시 재생이 화두가 된 지도 꽤 오래됐다. 도시 재생과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여전히 도시 재생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다. 평택에서도 이미 많은 곳이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돼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도시재생주민협의체를 운영하는 등 구도심 활성화 대책 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닌지, 너무 경쟁적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다른 지역과 너무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이다.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묻어있는 오래된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역사와 삶을 보존하면서도 그곳에 생명을 입히는 일이기에 어쩌면 신도시를 만드는 일보다 더욱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모른다.
이에 <평택시사신문>은 오래된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켜 주목받고 있는 전국의 다양한 재생 사례를 살펴보며 시민들과 함께 우리 지역 도시 재생의 필요성과 가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폐교 활용한 책 농사, 변방의 사람들이 작가가 돼
폐쇄된 카세트테이프공장이 멋진 예술센터로 탄생
사라질뻔한 옛 중학교 체육관이 도서관으로 변신



 

▲ 전북 고창군 '책마을 해리' 전경

 

 

공간의 변신이 지역을 살린다

도시에 오래된 건물은 반드시 있어야
오래된 공간은 역사성과 경제성 있어

도시에는 반드시 오래된 건물들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들여 복원한 훌륭한 건축물이 아니라 노후화되고 평범하고 흔한 건축물 말이다. 새로운 건물만 들어선 곳 보다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곳에 삶의 다양성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건물에는 그에 맞는 공장형 매뉴얼에 따르는 규격화된 직종만 들어서지만 정작 옷 수선이나 구두수선, 분식집 등의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업종들이 모여있는 곳은 임대료가 싼 오래된 건물이다.
그런 오래된 곳에는 역사가 스미고 삶의 스토리가 생기며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무게를 갖는다. 이런 오래된 공간을 재생에 활용할 경우 가장 큰 장점은 역사성을 담보로 하는 데다 경제성까지 갖출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 지역에 오래된 공간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건물을 스토리텔링하고, 주변과의 연계성을 생각하며,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창조된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새롭게 재정을 투입해 만드는 어떤 곳보다도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전국의 여러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오래된 창고나 지하 통로, 농촌의 오래된 빈집, 오래된 동네 목욕탕도 충분히 훌륭한 대상이 될 수 있다.
 

▲ 전북 고창군 '책마을 해리' 도서관 내부

 

폐교에서 책 짓는 공간으로 ‘책마을해리’

소규모 출판업으로 책을 만들어 성과
지역민과 함께 다양한 출판 프로그램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위치한 ‘책마을해리’는 폐교를 활용해 책을 만드는 곳으로 탈바꿈한 사례다. 이곳에서는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자신의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콘텐츠 발굴에서부터 디자인, 출판대행까지 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책을 내려면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막막하고 게다가 비용도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데 이곳에서는 책을 만들고 싶은 누구나 쉽게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작가의 꿈을 이루고 있고 실제로도 이곳에서 출판된 책은 올해의 세종도서에 선정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오래된 폐교에서는 출판 외에도 지역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고 진다. 계절에 따라 책을 발간하는 ‘계절계절 책학교’, 고등학생들이 책을 펴낼 수 있도록 하는 ‘청소년 인문 출판학교’, 지역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로컬콘텐츠 출판’, 마을주민들의 방과후 학교로 운영되는 ‘방과후 마을 책학교’, 어르신들의 마을 학교인 ‘밭매다 딴짓거리’, 세대를 넘어 청소년들이 어르신의 자서전을 써드리는 ‘삶글쓰기, 자서전 학교’, 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는 ‘교사 책학교’, 청년의 고민과 우울을 담은 ‘청년 책학교’ 등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축제로 ‘함께 읽기 함께 쓰기’ ‘부엉이와 보름달 작은축제’ ‘책 영화제 해리’ 학생들이 외국영화를 더빙하는 일도 이곳에서 진행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 '부산 F1963' 내부 중고책 판매장

 

낡은 공장이 예술 공간으로 ‘팔복예술공장’과 ‘부산 F1963’

건물의 정지된 시간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 예술의 무게감 담아

전주시 팔복동에 있는 카세트테이프공장은 지난 25년간 폐쇄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술가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자, 다양한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의 역사가 주는 무게감은 그대로 작품에 실려 관객에게 전달된다. 누구도 그 무게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은 실제로 그곳을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전주시의 산업단지가 정비되면서 이곳은 그야말로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었다. 주변은 황폐해졌고 급기야 1992년에 카세트테이프공장 쏘렉스는 문을 닫았다. 주변 공장지대 속의 섬이었던 이곳은 2016년부터 새롭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이곳을 새롭게 재생한 사람들은 이곳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했다. 저녁이나 일요일에 행사를 진행했을 때 민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인근에 있는 전주한옥마을이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곳이라면 인근에 있는 팔복예술공장은 기술과 산업의 현장에서 다양한 실험예술을 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전주시가 땅을 매입하고 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으며 공공과 함께 예술가, 시민, 기업이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예술 공단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카페가 생기면서 지역주민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문화관광해설사들의 일자리가 생겼다. 향후 음식점 등을 유치하면서 생기는 지역주민의 일자리도 빼놓을 수 없다.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인 팔복예술공장은 낡은 건물 외관이나 자재를 그대로 존치해 기억을 공유하고 그것을 예술의 힘으로 재탄생시켜 지역을 다시 활기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곳으로 예술창작공간, 예술교육공간, 지역 외부공간으로까지 확대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산 F1963 역시 옛 와이어공장이던 고려제강을 그대로 활용해 중고서점과 전시관을 만들어 사랑받는 곳이다. 고려제강은 세계 최대 특수선재 회사로 2008년까지 현수교, 자동차 타이어 등에 들어가는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곳이다. 현재는 리모델링을 통해 공연, 전시, 학술회의를 할 수 있도록 바꾸었고 맥주바와 커피숍도 입점해 있다. 원래 구조물을 거의 원형 그래도 활용한 이곳은 1963년에 지어진 공장으로 2016년에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한 후에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구성했다. 커피숍과 음식점, 예술전문 도서관, 서점, 전시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공장의 역사도 보존되어 있다.

▲ '지혜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는 어린이들

도심 속 폐교를 활용한 ‘지혜의 바다’

딱딱하고 정숙한 도서관 탈피한 시민의 공간
학생과 지역민의 다양한 체험공간 재탄생

경상남도교육청이 2018년 4월에 개관한 ‘지혜의 바다’와 ‘행복마을학교’는 도심 속 폐교 재활용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옛 구암중학교 체육관을 새롭게 단장한 ‘지혜의 바다’는 기존의 딱딱한 도서관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복합 독서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2666㎡(806평)에 약 10만 권의 장서를 비치하고 있는 지혜의 바다는 법정 공휴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중무휴로 경남도민에게 개방돼 언제라도 이곳을 찾아 편안한 휴식과 함께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했다. 이곳은 기존의 도서관이 가졌던 정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차와 이야기가 있는 공간, 독서·문화·예술이 공존하는 미래형 공간으로 차별화해 주민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곳이 되고 있다. 도시의 거실, 재미와 감동이 있는 오아시스, 살아 숨 쉬는 문화의 바다로 거듭나고 있는 이곳은 학교 1~2층 20개 교실을 활용해 목공실, 마을방송국, 요리실, 제빵실 등 10개의 테마형 체험실이 있는 ‘행복마을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지혜의 바다는 개관 후 하루 평균 5500명 이상이 꾸준히 찾고 있으며 행복마을학교와 연계된 프로그램에는 초·중·고등학교 학생 1만 2000여 명이 참여하고, 지역주민의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폐교된 학교 체육관을 리모델링해서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지혜의 바다’는 마치 도심 속 거실과 같은 도서관으로 학생들에게는 책 놀이터와 진로체험공간이 되고 있다.


 

▲ '창동예술촌' 거리벽화로 그려진 안내 지도



쇠락한 구도심 빈 상가에 활기  ‘창동예술촌’

구도심 빈 상가마다 입주 예술가들 활동
방문객과 시민에게 현장체험과 교육 진행

창동예술촌은 옛 마산 원도심권의 잃어버린 상권기능 회복과 지역 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창원시가 추진한 도시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2년 5월에 조성돼 운영되고 있다. 신도시가 생기면서 지난 10년 동안 사람이 찾지 않았던 원도심은 현재 약 60여 명의 작가가 상주하는 50여 개의 공간에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다.
과거 1960~70년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마산의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크게 조각가 문신 선생을 재조명하는 문신예술 골목, 마산의 르네상스 시절 재조명과 시대적 배경이 있는 추억의 거리를 재연하는 마산 예술 흔적, 창작예술인과 예술 상인들이 융화하는 에꼴드 창동이라는 세 가지 골목 테마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공간에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입혔으며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체험이 상시 가능하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다양한 분야의 입주작가들이 12개 시설에서 체험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문 갤러리와 아트샵, 추억의 명소 등을 통해 방문객과 시민들에게 현장체험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 자산 활용해 21세기에 주목받는 해외 도시

지역 역사문화 자산을 지키려는 시민의 힘
공공의 역할로 정체성 찾는 노력 돋보여

시대는 변해간다. 이제는 재활용이라는 단어를 넘어 창출이라는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 자산의 경제효과와 사회적 효과들이 어우러진 컬처노믹스가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논리와 연계, 그리고 역사문화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도시마케팅 등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기법 개발이 활성화돼야 한다.
21세기에 주목받는 세계적 도시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내부혁신을 거듭하는 도시 ▲쇠퇴하던 도시를 창조적으로 회복시킨 도시 ▲원역사와 경제를 연결하며 경제성장을 이뤄가는 도시 ▲환경을 테마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저감 시대를 리드하는 도시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는 자산과 그 자산을 재창조하는 공공의 역할이 치열한 집중을 통해 열정을 쏟아낸 결과라는데 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은 1980년대 이후 발전소로서 기능이 정지된 뱅크사이드화력발전소를 2000년에 미술관으로 리모델링 했다. 이 미술관의 성공 요인은 산업유산이라는 역사문화와 공공의 혜안, 지역에 대한 비전, 창의적 발상, 지역 쇄신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본의 오타루운하와 창고군도 비슷한 사례다. 이곳은 1973년부터 1984년까지 운하매립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지속해서 이어졌고, 시의 전향적인 수용과 제도화를 통해 경관을 관리하면서 세계인이 찾는 지역 명소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바로 산업유산과 지역 정체성, 시민운동이 함께 한 노력의 결과인 셈이다.
맨해튼 로어웨스트사이드에서 1930년부터 1980년까지 운행되던 고가화물노선은 2002년 재활용이 결정되면서 2010년 새로운 공원으로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비 1억 5200만 달러 중 시민으로 구성된 6000여 명의 회원이 약 500억 원에 달하는 4400만 달러를 모금으로 충당했고, 연간 약 500만 달러에 달하는 공원 관리 운영비의 70%를 회원들이 충당하고 있다. 이 수입은 회원제 운영, 책과 잡지 발간, 상품 개발 판매, 행사 개최 등으로 마련된다. 이곳의 성공 요인은 지역 산업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시민운동, 공공의 전향적 노력이 있어 가능했으며, 현재 이곳은 맨해튼의 신명물로 거듭나고 있다.
일본의 또 다른 사례로 가나자와의 역사환경 보전을 들 수 있다. 이곳은 1964년 ‘역사환경보전조례’를 제정해 역사를 보전하고 관광형 모델을 꾸준히 발굴하고 있다. 역사적 원형을 보존하고 흙담을 만드는 장인들을 키우는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인간문화재 수업도 꾸준히 하면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혜안을 갖고 오래된 공간에 주목하라

지역 곳곳에 방치된 오래된 공간에 주목
시민 스스로 고민하고 논의하는 자세 절실

이제 지역 곳곳에 방치된 오래된 공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단순히 많은 예산을 투입해 오래된 건물을 헐어내고 그곳에 새로운 것들을 세우는 시대는 지났다. 오래된 공간일수록 그곳에는 역사가 스미고 무게가 깃든다. 그곳에 스토리가 생기고 우리의 삶이 스미며 애정이 깃든다. 평택에도 곳곳을 살펴보면 이런 역사를 품어 안은 오래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그 공간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례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지역주민 스스로의 자발적 계기가 동력이 되어 평택 만의 자산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 요인을 기회 요인으로 만들 수 있는 창의적 역발상, 거버넌스를 통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확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수만을 위한 크고 빠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다수를 위한 작고 느린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민 의식이다. 그것이 평택시민의 에너지가 되고 이 에너지들이 합쳐질 때 평택의 오래된 공간은 다시 평택의 명소로 거듭나 평택의 미래와 경제를 새롭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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