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8월 30일

도시의 허영에 빠진 젊은 아내 가출
남편이 돌아가자고 애원, 죽은 척해

 

 

“금 三十일 오전 八시경 부내 종로서(鐘路署)에는 二十 가량 된 청년이 숨이 차게 달려와 살인(殺人)을 하였다고 자수를 하였다. 이에 동서에서는 목하 매전(梅田) 사법주임이 전근이 되어 부재중이므로 그 차석 박경부(朴警部)에게 이근익 부장(李根翼 部長)이 급급히 보고를 하고 형사대들이 즉시 자동차로 그 청년을 태워 가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인즉 부내 창성동(昌成洞) 一五二번지 문성녀(文姓女)의 음식점 건너방인데, 그곳에는 二十 가량 된 꽃 같은 어여쁜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게거품을 흘리고 누워있다. 그러나 사실을 조사한 결과 그 여자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거짓 죽음을 가장한 것이 판명되었다. 그 여자는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거짓 죽음을 짓게 되었는가?(하략)”(『매일신보』 1933년 8월 31일)

한때 젊은이들에게는 이른바 ‘도시병’이라는 것이 있다. 진짜 병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청춘을 보내는 시기 시골이나 농촌보다는 도시의 삶을 지향하고, 그러다 보니 가슴앓이도 한다. 심지어는 가출을 하여 무작정 도시로 몰려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 하다. 허영에 들떠 도시를 그리워하다 가출한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사연이다.

1933년은 만주사변으로 사회적으로도 불안하였다. 전쟁으로 우울한 소문이 더해지고 있었다. 오성면에 사는 21세의 여성 김오진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항상 도시에서 사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농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도시로 갈 요량이었다. 마침내 1933년 4월경 반봇짐을 싸서 집을 나와 무작정 서울로 갔다.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김오진은 종로 창성동이 있는 한 음식점의 작부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금니를 하고 웃음을 팔면서 지내고 있었다.

가출한 아내를 찾아 나선 남편은 서울의 여러 곳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김오진이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아내를 만난 남편은 지난 과거는 묻기로 하고 아내를 설득하여 집으로 가고자 하였지만, 아내는 끝내 거절하였다. 화가 난 남편은 발로 아내의 가슴을 찼는데, 아내는 넘어지면서 쓰러졌다. 놀란 남편은 아내가 죽은 줄 알고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하였다. 출동한 경찰은 아내를 살펴본 본 결과 죽지 않고, 죽은 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연인즉 농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연극이었다. 어이가 없는 경찰은 아내를 설득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여전히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요즘은 예전과 달리 도시를 떠나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어디에 살든 주체적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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