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가득 쌓인 흑백 앨범을 들여다보는 일이 있습니다. 흑백앨범 속에는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신 하얀 주름치마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는 청군을 의미하는 파란색 머리띠를 두르고, 손에는 응원도구인 금색 수술을 들고 학교 운동회 도중 사진을 찍던 어린 내가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던 지난 시절, 사진 속의 나는 운동회 때문에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상기된 표정입니다. 가물가물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참 장사를 하던 엄마도 그날만큼은 만사를 제치고 운동회에 오셨었고 행여 엄마가 오지 못할 때는 친구 엄마들이 살뜰히 챙겨서 통닭이며 김밥이며 음식들을 함께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특별한 행사가 많지 않았던 시절, 만국기가 걸린 초등학교 운동회는 동네잔치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엄마들은 바쁜 일 뒤로 미루고 갖가지 음식을 장만해 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 한켠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내 아이가 어디 있는지 찾기 바빴습니다. 운 좋게 그늘에 자리 잡은 날에는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앉아 그동안 밀린 수다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아침부터 엄마가 왔는지 안 왔는지 내내 신경을 쓰던 아이들은 마침내 엄마를 발견하면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씩씩해지곤 했습니다. “엄마 저기 있다”는 말 한마디에 왜 그리 든든하고 신이 났던지, 만국기 휘날리던 초등학교 운동회는 아이들의 운동회를 넘어서 동네 사람들의 잔치와 화합의 무대였으며 아이들의 기를 세워주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운동회의 꽃은 단연 마지막에 진행되는 이어달리기입니다. 어른들은 목이 터져라 아이들을 응원했고 그곳에서는 종종 달리다가 넘어져 일등이 꼴등이 되거나, 꼴등이 일등이 되는 감동의 드라마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울고 웃곤 했습니다. 순서대로 팔뚝에 찍힌 보라색 등수표시는 하루의 마감을 의미하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먹고살기 바쁜 날들이었지만 화합을 위한 별도의 제도나 장치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고 살았고, 마을에는 곳곳에 평상이 있어서 밥만 먹으면 평상에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으며, 일 년에 한번은 이렇게 아이들 운동회에 온 동네 사람들이 찾아가 하나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의 화두로 꼽히는 것이 바로 공동체정신과 공동체의 소통, 화합입니다. 평택시의회에서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제정한 조례는 이번에 전국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렇게 멋진 조례를 발의한 것이 평택사람으로서 참 자랑스럽다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괜스레 서글퍼집니다. 그냥 문만 열고 나가면 소통하고 화합했던 우리가 왜 이런 조례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얼굴을 마주할 수 없도록 공간의 구조가 차단된 것 등이 이유로 꼽힐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내내 사람을 그리워하겠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선뜻 말하지 못하고 마냥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이 자꾸만 서글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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