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탄에서 20년 넘게 야학을 운영하면서 그간 수많은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의 참여 속에서 학력 혹은 졸업장이 필요한 분들에게 부족하지만 작은 희망을 제시해왔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소중한 경험이다. 올해도 4월 시험에 대비하는 수업을 연초부터 하고 있다.
처음 찾아오시는 40~50대 성인의 대부분은 산업화시기에 가정 형편 등으로 제때 공부를 하지 못한 분들이다. 학력사회의 두터운 벽을 삶 속에서 느끼고 좌절하다가 늦게나마 뜻을 세우고 부끄러움을 떨치며 찾아온 분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눈이 띄는 특징은 학교를 그만둔 학생들의 수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정고시 시험장에 가보면 그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청소년들의 자퇴 동기는 40~50대와 달리 학교 적응이 힘들었거나 제도교육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크다. 제도교육에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중학교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은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개인의 힘으로 알아서 학력을 취득해야 한다. 학교 교육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는 있으나 21세기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시설, 교사, 제도가 학교 교육에 대한 청소년들의 기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늦게나마 평생교육을 강조하지만 이것도 기초학력, 학습조직, 직업교육 등 집중 분야는 도외시한 채 단기 실적에 매달리는 취미교육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대구 광주의 학교폭력, 입시제도의 문제, 정치적 비리, 청년 실업 등 온갖 사회비리의 근원에는 학력사회라는 우리가 극복해야할 문제가 근저에 있다. 학력 취득은 자연스러운 선택과정이 되어 각자 자기 처지, 수준에 적합한 직업과 연계한 ‘스토리’ 학력이 소중함에도 현실은 ‘고졸’, ‘대졸’, ‘대학원졸’ 등의 ‘졸업장학력’이 더 인기가 있다. 그러니 가짜박사에 논문대필이 판을 친다. 학생들은 입시에 내몰리고, 청년들은 스토리가 없는 스펙 쌓기에 바쁘고, 유권자는 선거에서 후보자가 일류대를 나와야 선호하는 현상들이 어지럽게 갈(葛)과 등(藤) 이 되어 해결의 우선순위도 없이 진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개인이 성취한 학력 자체를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학력이 전부인 사회는 곤란하다. 학력이 본래 의미인 ‘지식의 분석, 가공, 추론의 힘’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로 변질돼 특정이익을 추구하며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족쇄가 되어서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책과 멀어지게 만드는 교육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와 달리 서구사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자기성찰을 통해 학력 중심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사회자본 내지, 개인의 문화적 취향을 세련화 시키는 상상력과 문화자본을 중시하면서 자본주의 4.0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개인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룩한 사회자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자본은 결국 ‘스토리가 있는 삶’에서 나온다. 평생 배운다는 자세로 과거의 성취에 연연해하지 않고 새롭게 배움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이 고귀해야 한다.
유학의 비조 공자가 쓴 동양 고전 〈논어〉의 첫글자는 ‘학(學)’이며 마지막 글자도 ‘학(學)’이다.
배우는 일은 기쁨에서 시작해서 이웃과 함께하는 관계의 학이며,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평생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식적 졸업장과 특수목적의 동문회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 아닌가 ?

 






황우갑
평택시민아카데미 회장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