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마음이나 감정을
내 생각이 아닌
그대로 알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 공일영 소장
청소년역사문화연구소

‘동감’과 ‘공감’은 언뜻 보면 같아 보이지만 깊은 의미를 들여다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동감은 “어떤 의견이나 생각에 한가지로 똑같이 느낌”, “한가지로 똑같이 느끼다”라는 의미이고 공감은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감적 이해’라는 것인데 이는 “상대방의 마음이나 감정을 상대방이 느끼는 그대로 앎”이다.

과거의 상처뿐 아니라 현재의 아픔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우리는 동감해야 할까? 공감해야 할까?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힘내세요~”

필요한 말이기는 하지만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른다. 힘들어 죽겠는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날까? 슬퍼 눈물이 끊이지 않는데 이겨내고 웃어보자고 하면 웃음이 나올까?

“그래요, 힘들 땐 그냥 울어요”하면 어떨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있을까?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아니라면 그 슬픔을 알 수 있을까? 난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 한겨울 이불 몇 장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분들의 마음에 우리는 공감적 이해를 하고 있을까?

최근 대한적십자사 후원금 납부용지가 과거 공과금 지로 용지와 같은 형태로 제작돼 가정마다 발송되고 영문도 모르고 납부하는 문제가 이슈화됐다. 이미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문제 제기였으나, 개선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후원한 돈이 크든 작든 어디로 어떻게 쓰이는지, 의미 있는 일에 쓰이는지, 관련자들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닌지, 투명해야 하는데, 그간의 활동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것은 그냥 의무적이거나, 마지못해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금을 받을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적 이해가 이루어지는가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신들 중에도 그러니 오죽하겠는가?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가고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그 속에서 사회라는 울타리, 어쩌면 ‘지구’라는 지역 공동체 안에서 사는 우리들은 지역과 문화, 언어, 종교를 뛰어넘어 서로에 대한 공감적 이해가 이뤄지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단일민족의 개념이 사라지고 다문화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타 국적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하는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못할 것도 아니다. 나를 내려놓고 너를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이나 감정을 내 생각이 아닌 그대로 알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2019년이 모두 지났다. 누구에게는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일이 많았던 한 해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아쉬움만 가득한 한 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생각과 반성조차 할 수 없는 한 해일 수도 있다.

세상에 빛과 어둠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빛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그들에 가려 어둠에서만 생활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가면서 빛을 가리지 말고 빛줄기가 다음 사람에게도 이어질 수 있도록, 그래서 실족하지 않고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감하며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년 총선 레이스에 돌입하면서 여러 예비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제발 국민들의 아픔을 보듬고 필요를 고민하면서 국민과 함께 공감하며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국민의 진정한 대표들이 되었으면 한다. 국민은 선거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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