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는 저 혼자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병아리는 안에서, 어미닭은 밖에서 함께 알껍데기를 쪼아야 병아리가 순조롭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줄탁동시 啐啄同時’라고 합니다.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때가 되어 알 밖으로 나오기 위해 부리로 껍데기 안쪽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병아리의 소리를 듣고 바깥에서 알을 쪼아 도와주는 것을 ‘탁’이라고 하니, 줄과 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알을 쪼아댄다고 해서 병아리가 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병아리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바깥세상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품어주는 어미닭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어미닭은 알을 품는 동안 여간해서 변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하니 그만큼 정성을 쏟아야 병아리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미가 알을 품는 동안 병아리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 내부에서 내장기관도 갖추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도 갖추면서 부지런히 탄생의 순간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때가 되어 형체를 갖추게 된 병아리는 안에서 알껍데기를 쪼아 바깥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에 맞춰 어미닭도 바깥에서 함께 알을 쪼아줍니다. 그것은 거의 동시에 이뤄져야 하고 그래야 비로소 빛나는 탄생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비슷합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는 산모 혼자만 힘을 준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태아가 스스로 산도를 따라 나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 때에 맞춰 산모가 힘을 주어야 비로소 순산하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어미닭이 알을 품는 것처럼 산모 역시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애지중지 태아를 품는 시간이 필요하고, 태아도 그 안에서 부지런히 다양한 기관들을 갖추며 바깥에 나올 때를 기다립니다.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이 탄생할 때는 이와 같은 이치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제도도 그렇고, 새로운 조직도 그렇고, 세상을 바꿀 새로운 인물의 탄생도 그러합니다. 모든 것이 무르익어 탄생을 앞두고 있을 때는 반드시 안과 밖에서 함께 힘을 모아야 비로소 순조롭게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전에는 반드시 충분히 무르익을 수 있도록 살피고 보듬어주는 배려, 그리고 스스로도 형체를 갖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불가에서는 알의 안쪽에서 쪼는 병아리를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로 보고,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으로 생각해서 화두를 던지기도 합니다. 하나의 화두에 대해서도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충분히 무르익지도 않고 그럴 수 있도록 보살피지도 않은 상황에서는 안팎에서 아무리 껍데기를 쪼아댄다고 해도 탄생의 결실을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라거나 혹은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기를 바란다면 밖에서는 세심하게 보살펴 품고 키워가야 하고 안에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기다리던 때가 오면 단단한 껍데기를 함께 부수어야 우리가 원하는 위대한 탄생의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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