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적선하고
덕을 쌓아 짓는 것

 

 
▲ 박준서 연구위원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2020년 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기해년己亥年이 지나고 며칠 후 설이 오면 2020년 경자년更子年 새해를 맞이한다. 해가 바뀌거나 설 전후에 우리는 늘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곤 한다.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끼리는 간편한 휴대전화 문자로 안부를 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하나같이 복을 받으라고 하는 고마운 덕담이다. 진짜 많이 받고 싶은 것이 복이다.

하지만 복을 받으라는 인사말은 덕담이기는 하지만 누구한테 받으라는 건지, 어디에 가서 받는 건지, 어떻게 하면 받는 건지 또한 그 복을 받으라고 말한 사람이 복을 주지도 않으면서 받으라고 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자세하게 받을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메시지는 하나도 없다. 나도 그분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답장을 보내지만, 복을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서 복이란 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때 받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을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무턱대고 복을 받으라고 하지 말고 복을 지으라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복을 많이 지으면 저절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복’이란 무엇일까 새삼스럽게 복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와 그에 따른 기쁨, 좋은 운수, 복조福祚, 좋은 운수로 얻게 되는 기회나 몫이 많음”이라고 사전에서 복을 설명해준다. 새해에는 어디에서 듬뿍 복을 받았으면 참 좋겠다. ‘받다’라는 단어도 스스로 할 수는 없기에 타동사다. “주는 것을 가지다. 어떤 행동이나 작용의 영향을 당하거나 입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이 주는 것을 가지라는 것과 어떤 행동이나 영향을 당하거나 입는다는 뜻이다. ‘기원하다’도 타동사로 “바라는 일이 이뤄지기를 빎”이라는 의미다. 복을 바라니 이뤄지기를 빌 뿐 스스로 찾아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기원한다고 가져다줄 사람이나 신은 없다. 복이 깃들기를 바랄 수만은 없다. 아무런 한 일도 없고 베풀지도 않았는데 복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지는 않을 것이다. 복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옷도 짓고, 글도 짓고, 밥도 짓고, 농사도 짓는다. 옷도 잘 지어야 예쁘고 글도 잘 지어야 감동하고 밥을 많이 지어야 나도 배불리 먹고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고 농사도 잘 지어야 풍년이 오며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이렇듯이 복은 ‘스스로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듯이 자기가 주체가 되어 적선하고 덕을 쌓아 짓는 것이다.

복을 짓는 것은 내가 지어서 상대방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내 복도 쌓이고 상대방에게 나누어주니 축원의 의미도 담겨있다.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보다 “복을 많이 지으십시오”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복을 짓는다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것이다. 복 짓는 일이 결국은 적선하는 것이고 그것은 나아가 집안의 경사를 맞는 것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 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이 있듯이 덕을 많이 쌓고 선을 많이 베푸는 일이 자기를 위하고 주위를 위하는 일이다.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인복人福이라 할 수 있는데 인복만 있다면 가진 게 없더라도 만사를 다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복은 인덕仁德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덕을 쌓아야 인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덕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평택시사신문>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