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1월 19일

4인조 강도 중의 한 사람 
감옥 가느니 차라리 자살

 

 

 

 

“진위군 서면 유천리(振威郡 西面 柳川里)에 사는 윤철용(尹喆鏞, 三○)은 지난 십삼일 오전 네 시에 수원군 양감면 용하리(水原郡 楊甘面 龍河里) 일천이십팔 번지 김정현(金定鉉)의 집에 들어갔던 사인조 강도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나머지 세 사람은 이미 수원서에 체포되어 취조 중이라 함은 일찌기 보도된 바어니와, 그 사람은 전기 세 사람에게 부동되어 강도를 하였던 바, 그 후 그는 후회를 하고 혼자서 정신상 고통을 비상히 받다가 한편으로 동료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음에 자기도 체포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차라리 체포되어 감옥생활을 하는 이보다는 죽는 것이 좋다고 지난 십구일에 진위군 고덕면 해창리(振威郡 古德面 海倉里) 송림 중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더라.”(『매일신보』 1926년 11월 25일)

‘자살’이라 함은 스스로 생명을 끊는 행위이다. 그런데 원인이 복잡하기 때문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통계로 보면 염세, 병고, 신경쇠약, 실연, 가정불화 등 그 원인으로 꼽힌다. 평택 고덕면 해창리에서도 4인조 강도 중 한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진위군 서면(현 팽성읍) 유천리에 사는 윤철용은 좀 소심한 성격이었다. 하루는 3명이 찾아와 강도로 같이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4인조 강도에 참여하였다. 4인조 강도는 1926년 11월 13일 오전 4시 수원군 양감면 용하리 김정현의 집을 몰래 들어가 재산을 강탈하였다. 일단 몸을 숨기는 데는 나름 성공하였지만, 결국 윤철용을 제외한 세 명은 수원경찰서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강도질을 한 것을 후회하던 윤철용은 정신적으로도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다. 더욱이 동료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약했던 윤철용은 더 고심을 하게 되었다. 자신도 체포될 것이 분명하고, 그럼 감옥에서 콩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심하던 윤철용은 강도사건을 일으킨 지 6일 후인 11월 19일 고덕면 해창리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한 것이다. 불행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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