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6월 2일

인적 드문 곳으로 유인해
때려눕혀 25전 뺏어 도주

 

 

 

 

“소 살 돈을 亂打 强奪, 사람을 속여 돈을 뺏은 자

지난 一日 午前 六時頃에 京畿道 振威郡 北面 鳳南里 三五八 牛肉行商 吉順龍(一七)의 집에 어떤 者가 찾아와 소 한 마리를 팔 것이 있으니 사라고 하여 吉順龍을 데리고 洞里 烏山을 向하고 가다가 人跡이 드문 곳에 이르러 그 者는 突然히 順龍을 때려눕히고 조끼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現金 二十五錢을 强奪 逃走한 事件이 있었는데, 所轄 平澤署에서는 犯人을 嚴探하던 中 지난 二日 午後 八時 四十分頃에 振威郡 丙南面 平澤里에서 朴龍在(二七)라는 者를 眞犯人으로 逮捕하여 目下 嚴重 取調 中이라더라.”(『매일신보』 1928년 6월 5일)

현재 평택은 도농복합도시도 크게 발전하였지만 1920년대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었다. 더욱이 평택은 ‘쌀’의 집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졌다. 당시 논농사는 대부분 수전농으로 무엇보다도 물이 필요하였지만, 소도 중요한 도구였다. 그렇다 보니 평택에는 소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잦았다. 예를 들어 장날 소 판 돈을 빼앗는 사건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소를 판다고 속여 돈을 빼앗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 진위군 북면 봉남리(현 진위면 봉남리)에서 이른바 정육점을 하는 10대 후반의 청년 길순용이 있었다. 1928년 6월 1일 오전 6시경, 길순용이 운영하는 정육점에 박용재라는 20대 후반의 청년이 찾아왔다. 자신의 집에 소가 여러 마리 있는데, 그중 한 마리를 팔려고 한다면서 같이 가보자고 하였다. 이에 솔깃한 길순용은 박용재를 따라나섰다. 봉남리에서 오산으로 가던 중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이르자 박용재는 길순용을 때려눕힌 후 조끼의 주머니에 있는 현금 25전을 빼앗아 달아났다.

얼떨결에 강도를 당한 길순용은 관할 평택경찰서에 신고했다. 평택서는 범인 박용재를 잡기 위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엄중 탐문 수사를 하였다. 평택서는 만 하루가 지난 6월 2일 오후 8시 40분경 병남면 평택리(현 원평동)에 숨어 지내던 박용재를 찾아 체포하였다. ‘뛰어 봐야 벼룩’이라고, 멀리 달아나지 못한 박용재는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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