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협치의 성공을 위해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면 좋겠다

 

 

   
▲ 권현미 사무국장
평택건강과생명을
지키는사람들

한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이웃이 있고, 주민 간의 대화가 있고, 경찰서도 있고, 학교도 있다. 그러나 도서관은 없다. 마을에서는 모두가 함께하는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마을의 모든 공간은 이미 주인과 목적이 있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모두가 함께 쓰기에 필요한 공동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초자치단체는 도서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낡은 건물 세 채를 매입했다. 그러나 당장 건물을 짓거나 리모델링할 예산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낡은 건물에서 먼저 모임을 만들었고, 책을 모아 도서관 역할을 하게 했다. 마을 축제도 열었다. 그리고 참여예산으로 건물을 지을 예산이 확보되자, 시민의 요구와 필요를 담아 이야기가 있는 독특한 모양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세웠다. 그리고 도서관 운영을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그 마을은 도서관 마을이 됐다.

지난 1월 21일 비전2동행정복지센터 강연에서 들은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마을 도서관을 만들었더니 도서관마을이 되었다는 이 이야기의 중간 과정이 궁금한 것은, 마을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필요를 풀기 위한 노력이 아름답고 독특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사는 평택, 우리 마을에도 있으면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평택시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도시화의 진행은 빠르지만, 외관도 내용도 잘 계획되지 못해 난개발로 인한 문제들이 해결책을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면 노후 산업단지 옆에 새로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단지 문제라든지, 상가지역에 주차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발생한 주차난 등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만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진 적극적인 시민, 그들과 함께 손잡는 것에 주저함 없는 행정체계다. 여기에 아이디어와 공간, 예산 등을 첨가해야 한다. 그중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어쩌면 공간이다. 공간이 주는 의미는 남다른데, 그 이유는 공간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을 가진 적극적인 시민이 행정과 손잡을 수 있게 하는 것도 공간이며, 아이디어를 내고 선별하게 하는 것도 공간이 가진 힘이다.

구산동 도서관마을이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가 먼저 마련해준 낡은 건물 세 채가 큰 역할을 했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시민이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이뤄진 활동이 건물을 짓고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도시에 산재한 문제들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누가 먼저 나서야 하는지 구산동 도서관마을의 건축 과정은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새로운 답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평택시민에게 백지 같은 공간이 허락되면 좋겠다. 마을마다, 동네마다 빈 공간을 주민에게 열어두고, 시민의 다양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펼쳐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주어지듯 시민들에게 공간이 주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누군가는 악기를 연주하고, 누군가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웃을 만나 차를 마시고, 함께 저녁상을 차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긴 겨울방학을 지루해하는 동네 꼬마들이 모여 보드게임이라도 한다면, 우리의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던 추억의 골목이 아이들과 만나게 되고, 우리의 일상이 조금 더 풍성하고 행복해지는 데 도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곳에서 이야기하다가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제시될 수도 있고, 쓰레기 문제가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역사회의 문제를 일부가 아닌 다수의 결정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는 광장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평택시 협치의 성공을 위해 동네마다 광장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면 좋겠다.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마을이 된다. 구산동 도서관마을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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