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으로 바라볼 때
파병의 무서운 의미를
알게 된다

 

 
▲ 임윤경 사무국장
평택평화센터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정부는 이란 앞 바다인 호르무즈 해협에 청해부대 파병을 결정했다. 미국의 파병 요청을 수락한 것이다. 한 나라를 전쟁의 긴장 속으로 몰아가는 파병 결정을 우리는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미국이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시설을 폭격하면서 이란을 비롯한 주변 지역은 전쟁 위협이 높아졌다. 그전부터 미국이 이란과 맺은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해 이란을 제재하고 위협하면서부터 긴장은 커져 왔다.

이러한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어김없이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이란 문화를 들여다보면 우리 정서와 많이 닮았다. 우리 안방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이 이란 국민에게 엄청난 인기를 받았고 우리와 비슷한 가족 중심의 문화를 가졌으며, 전쟁을 겪었다는 점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다. 두 달간 이란 여행을 다녀온 지인은 이란사람들이 한국을 너무 좋아해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란은 한국을 가까운 친구로, 동경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는 청해부대 파병이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해소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하고, 평화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파병을 소리 내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20%의 사람들보다 소리 내지 않는 80%의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다수의 무관심은 역사 안에서 늘 강력하게 작동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수에 의해 전쟁이 시작되고 다수의 무관심이 이를 부추겼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경제가 악화하면 모든 이들은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결국 희생자가 된다. 우리 국군의 베트남 전쟁 파병이 그 한 예다.

베트남 전쟁 때 우리 국군은 해외 첫 파병을 했다.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파병했고 이듬해 전투병으로 확대돼 10여 년 동안 32만여 명이 파병됐다. 그때도 미국의 요구로 파병을 시작했는데, 대다수 국민은 무관심했으며 그 대가는 참혹했다. 우리 장병 약 5000명이 전사했고 1만 명이 부상했다. 그 후유증이 커 파병은 한동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들의 희생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아직도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다.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 무관심은 겨울 찬바람보다 매섭고 우한 폐렴보다 더 두렵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타인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은 무의미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관심하면서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관심은 결국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셈이다.

지금 이란을 둘러싼 주변 상황은 말하고 있다. 미국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현 정권 유지를 위해 일어나지 않아도 될 군사적 도발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란 상황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주시해야 한다. 무관심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으로 이란 사회를 볼 때 파병의 무서운 의미를 알게 된다. 그것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반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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