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새 옷을 사드릴까 하고 여쭤보면 “있는 옷도 다 못 입고 죽을 텐데 새 옷이 뭐가 필요 하냐, 그럴 돈 있으면 살림에 보태 써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정작 고운 색깔의 새 옷을 사서 안겨드리면 몇 번이고 거울 앞에 서서 비춰보며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십니다. 그때는 “이 옷은 세일기간에 샀기 때문에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말을 꼭 덧붙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마음을 감춘 채 바꿔오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요.

젊은이들이 예쁜 새 옷을 입으면 행복해지는 것처럼 노인들도 새 옷을 입으면 행복해 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문제인 만큼 노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든, 아흔이 된 노인들은 그런 감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감정도 사라질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정이 과연 늙을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굳이 학자들의 견해를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감정이니까요.

그래서 그 대상이 누구든 간에 상대방의 감정만 잘 읽어낼 수 있다면 세대 간의 벽도 어느 정도는 허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노인들은 살아온 연륜만큼 그것을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읽어내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겠지만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처한 환경이나 개인이 살아온 것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조금씩 다르고 그것까지 이해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인간을 ‘감정의 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요즘은 한발 더 나아가 반려동물의 감정을 읽어내는 기술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상대의 감정을 읽는 것이 중요하긴 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감정을 잘 읽는다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 형성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얼마나 잘 읽느냐에 따라 관계가 부드럽게 이어질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상대는 불쾌한데 나는 신나서 이야기하거나, 나는 우울한데 상대가 마냥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관계는 이미 어긋났다고 보아도 됩니다. 

감정을 잘 읽어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큰 틀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인간을 이해한 후에는 개별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것은 상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감정은 개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의 변화란 상대방의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고 그것에 오롯이 집중해야만 상대의 감정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해도 좋은 것은 여전히 좋고, 싫은 것은 여전히 싫고, 화가 나는 것은 여전히 화가 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서로간의 이해의 폭도 조금은 넓어질 수 있고 세대 간의 벽도 조금은 허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평생 최신식 주방을 가져본 적 없다던 팔순 노모에게 우격다짐으로 새 주방을 안겨드리자 잠도 못 이루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인간의 내면에 담긴 감정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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