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0월 13일

전국에서 호역 대유행
도선장에서 검역 강화

 

 
 

 

“당국에서는 남선에 호역이 유행하는 까닭에 이를 염려하고써 경부선 평택 성환 양지 도선장(渡船場)에서도 보로 다니는 여객의 검역을 개시하게 하였다는데, 양 삼일 중에 부령으로 발표되리라더라.”(『매일신보』 1919년 10월 12·15일)

최근 중국발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다. 중국 전역에서 사망자가 1600명을 넘어섰으며, 확진자가 7만 명에 이른다고 보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우한폐렴에 대한 불안으로 방역에 힘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29명의 확진자가 나왔지만 크게 염려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거리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로 경계를 하고 있다. 중국에서 입국한 여행객이나 사람은 자가 치료를 위해 14일간 격리를 하거나 격리되어 집단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시대에는 언제나 전염병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1919년은 3·1운동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해이지만 전염병이 크게 창궐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에 유행한 전염병은 ‘호역虎疫’이라고 불렀고, 한말에는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렀던 콜레라였다. 당시만 해도 예방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관계로 콜레라가 유행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렀다. 때문에 개개인에 대한 방역에 좀 더 신경을 쓰고, 당국에서도 이를 강화하였다.

1919년 한 여름이 지난 10월 전국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였다. 같은 날 신문에 의하면 부산에서 30명의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당국에서 발표한 콜레라 환자가 9천여 명, 사망자가 5천여 명에 달하였다고 밝혔듯이,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망률이 50%를 넘었으며, 하루 발생 환자가 3백여 명이 넘을 정도였다.

특히 남부지방에서 유행하는 콜레라가 중부지방으로 확산됨에 따라 평택에서 검역을 위한 방침이 내려졌다. 평택과 성환을 넘나들 수 있는 도선장 즉 나루터를 이용하는 사람마다 검역을 실시하도록 조치하였다. 검역 방법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요즘처럼 몸의 열을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다행히 평택에는 콜레라가 유행하지 않아 큰 피해는 없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스스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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