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문학동네

 

 
▲ 김정은 사서
평택시립 배다리도서관

최은영 작가의 책은 관계의 책이다. <쇼코의 미소>가 타인과의 관계맺음,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상처의 이야기라면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 관계의 끝, 상실의 이야기다. 부서질 듯 찬란했던 젊음이 소멸하듯 이유도 모른 채 사라져 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과의 끝에 관한 이야기다.

<그 여름>의 이경과 수이는 햇볕이 유난했던 그 여름, 열여덟 여름에 만난다.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편견 속에서도, 스무 살 봄에도 이경과 수이는 함께이다. 레즈비언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은지와의 짧은 일 년간의 연애가 아니었다면 이경은 수이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서른넷의 늦은 봄, 돌아온 고향에서 이경은 열여덟의 수이를 만난다. ‘김이경’, 그렇게 자신을 부르고 어색하게 서 있던 수이, 그런 수이를 골똘히 바라보던 어린 자신을 만난다.

날갯죽지가 길쭉한 회색 새 한 마리가 강물에 바짝 붙어 날아가고 있다.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안다. 처음 만난 다리 위에서 수이가 가르쳐준 ‘왜가리’, 새 이름을 기억하듯이 이경은 수이를 통해 그 관계의 기억을 통해 서른 넷 늦은 봄 강물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인생을 알아간다. 너무 어려서 어설펐던 그래서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청춘, 그 시절 우리가 겪었던 관계의 끝에 대한 기억이 시리게 다가오는 단편이다.

<모래로 지은 집>은 천리안 동호회를 통해 만난 공무, 모래, 나비의 이야기다. 모래만의 중력으로 셋은 가까워지고 공무가 산 디지털 카메라에 스무 살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진다. 나약하고 관계에 의지하는 모래에게 나비는 화가 나고,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모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공무는 모래를 밀어낸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모래야.”

서른다섯이 된 나비는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이 맴 돌기만 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그렇게만 반응한다.

이 책은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 때문에 휘청거리고 맘 졸였던 숱한 경험들이, 그러했기에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으로 벽을 쌓았던 지난날들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다. 불완전한 사랑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했던 자들을 위한 위로의 책이다. 또한 우리 곁의 편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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