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주변에서 ‘웰다잉’이라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웰빙’ 바람이 한창이던 때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연을 찾았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찾았습니다.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나의 삶을 위한 여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덩달아 웰빙 산업이 발달했고 많은 제품들이 웰빙이라는 이름을 입고 새롭게 선을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웰빙이 갖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잘 사는 법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요즘은 이상하게도 웰빙과 정 반대로 읽히는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분명 삶과 죽음이 같을 수 없고, 삶의 반대되는 말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오래 가져온 우리로서는 웰빙과 웰다잉의 차이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한때 깊이 있는 고민 없이 유행처럼 번지던 웰빙 바람처럼, 웰다잉 역시 한 때의 유행으로 인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왠지 웰빙을 생각했을 때보다 조금은 더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죽음’이 갖는 의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것도 그냥 죽음이 아닌 좋은 죽음이라니 그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죽음이라는 말이 포함되어서인지 웰다잉은 젊은 사람보다는 주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관심을 더 많이 갖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나이 드신 분들이 더 많이 하게 될 테니 그럴 법도 하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웰다잉’이라는 말은 모순입니다. 죽기 직전까지야 의식이 있으니 죽음이 있을 것이라고 의식할 수 있겠지만 막상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마저도 모르는 것이 죽음인데 거기에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이 있을 리 만무하니까요. 그렇다면 웰다잉이 갖는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웰다잉’이란 어쩌면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웰다잉이 과정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삶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엔 ‘웰빙’의 또 다른 표현이 될 수 있겠지요. 다만 죽음이라는 한정된 것을 가정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절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지만 그것을 삶의 영역에 놓아두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니 일부러 죽음을 앞세운 것일 수도 있지요.

결국 좋은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좋은 삶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는 각자의 판단과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 삶이 좋은 죽음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웰다잉을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노인으로 한정될 이유는 없는 셈입니다.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노인이든 젊은이든 같고, 어쩌면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더 유용한 고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젊음’이 내가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니듯 ‘늙음’도 내가 원해서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만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웰다잉’을 염두에 두고 한번 씩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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