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문학동네

 

▲ 이수경 사서
평택시립 배다리도서관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압도적인 비극으로 끝나지만 끝없는 무력감과 싸워가며 고통에 공명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말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먹먹하다. 무슨 마음일까 들여다보니 작가의 말이 공감한다. “끝없는 무력함과 싸워가며 고통에 공명하는” 책 속 인물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숨 막히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만 보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응원하는 혼란스러움.

십대, 이십 대 시절 어른들이 지금 너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야 라고 말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어린 마음에도 세상에는 한계가 분명히 보이는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는데 젊기만 하면 해결이 되냐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애늙은이였는지 해결하고 극복해가는 방향을 고민하기보다 한계, 무력함 등이 더 보였고 느껴졌다.

더 고집스러워지고 폐쇄적이 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좋아하는 부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것이다. 이 많은 문제, 오류, 한계, 고통, 폐쇄, 불안, 부정의,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고 싶고 어떻게 죽어가고 싶은지 드문드문 생각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드문 드문이라는 것이다. 자주 자주가 아니라.

나이 먹는 만큼 지혜가 쌓이지는 않지만 ‘인간관계’에서 문제없기를 바라지 않는 정도의 혜안을 가지게 되고 세상 대부분의 일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빼버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만큼 눈치가 생겼다.

<멧돼지가 살던 별>에는 명백히 막힌 길 가운데서 갈 곳을 잃은 인물들과 멧돼지가 등장한다. 섣불리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전철역에 출몰한 멧돼지에게 “그러다 죽어”라고 말을 건네는 아이, 유림. 어쩌면 유림은 스스로에게 말 거는 건지도 모른다. “이러다 죽어” 그러니 다른 방법을 또는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바람 한 점 드나들지 않을 것 같은 삶의 순간에 유림은 제목도 낯선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책을 읽는다. 그 지점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워지는 순간 바람 한 점 드나들고 막혔던 길에 길모퉁이가 생겨나기도 한다. 삶의 어떤 문제는 직접,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무언가를 ‘상상’하지 않으면 해법은 쉽게 생기지 않는 법이다. 책에서는 유림의 말을 이해하는 멧돼지가 나타났다. 압도적인 비극으로 무력감에 짓눌려있는데 함께 “행동”하자며 손 내미는 존재가 생긴다. 그 멧돼지가 살던 별은 비극에 무릎 꿇지 않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곳일지도 모른다. 무릎 꿇지 않는 이들에게는 천천히 무언가 다가온다. 소란스럽지 않고 고요하게.

 

주호는 생각했다. 어떤 행복은 소란스럽지가 않다고. 그저 고요하다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본문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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