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월 11일

평택의 공공사업, 선량풍속 배양 목적
경철 문제·임원 개선·규칙 보정 등 결의

 

   
 

“平澤의 公共事業을 獎勵하고 善良風俗을 培養하여 開發 發展을 硏究 進行하기로 目的하는 平澤發展會에서는 去 一日 午後 六時에 李河善氏宅에서 定期總會를 開하고 輕鐵問題, 任員改善, 規則補正 等에 關한 件을 決議하였는데, 役員은 滿場一致의 可決로 左記와 如히 當選되었더라.(하략)”(『매일신보』 1919년 11월 5일)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지역의 발전은 지역 주민들의 의지와 힘이 가장 큰 무기이다. 그러한 관계로 지역의 유지들이 앞장서서 단체를 만들기도 하고 나름 역할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도 이러한 흐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평택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주민의 발전적 삶을 위해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 등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른바 이들을 지역 유지라고들 한다. 지역 유지들은 각종 사회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역량을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사회가 존재하는 한 함께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대표적인 유지들의 사회단체가 ‘평택발전회’였다.

평택발전회가 1919년 11월 1일 정기총회를 개최한 것으로 보아 1년 전인 적어도 1918년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정기총회는 1년에 한 번 개최하는데, 회의 차수를 표시한다. 그런데 이날 개최된 정기총회는 차수가 없으며, 규칙 개정과 임원을 개선을 하였다는 점에 1910년대 중반 조직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평택발전회는 정기총회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경철輕鐵 문제였다. 평택은 1905년 경부선이 부설되었지만 1917년 조선경편철도주식회사에서 평택을 기점으로 하는 경철이 부설된다는 보도에 따라 이해 8월 20일 오후 7시 평택에서는 제등행렬과 여흥으로 축하회를 가진 바 있었다. 당시 경철은 평택을 기점으로 장호원을 거쳐 음성과 여주에 이르는 노선이었다.

평택 입장에서는 경철의 부설은 충북 내륙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망이었다. 이에 평택발전회는 이 경철의 부설이 평택 발전의 중요한 계기로 인식하고 최우선의 의제로 논의했다. 그러나 경철은 경제성 등으로 인해 끝내 부설되지는 못하였다.

이날 개선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한붕석韓朋錫, 부회장 신찬우申贊雨, 협의원 이성렬李成烈 이진선李晋善 유창근柳昌根 최화섭崔華燮 이학준李學俊 김문환金文煥 이하선李河善 서병직徐丙稷 남상은南相殷 최한긍崔漢肯 서상복徐相馥, 회계 정학모鄭鶴謨, 서기 성주한成周漢 김기현金驥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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