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치료가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맞물려 있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적 욕망의 배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 임윤경 사무국장
평택평화센터

십여 년 전, 불의의 사고로 필자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게 됐다. 자가면역질환이란 세포가 자기세포를 적으로 잘못 인식하고 공격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면역억제재를 투여하는 현대의학은 아예 모든 면역력을 억제시켜버리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처음엔 그저 면역 관리만 잘하면 되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만 해도 그렇다.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일을 쉬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 긴급 문자에 매달려 손을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하는 정도다. 달리 뭘 할 수도 없다.

임상병리학의 분류표에 따르면 필자는 만성질환자로 분류된다. 임상병리학 분류표가 어떻든 나는 ‘정상’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독감만 해도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난 뒤 1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모두가 두려워하는 바이러스에도 잘 지나왔다. 조심한 이유도 있지만 ‘동양의학’을 공부하고 스스로 몸 관리를 한 이유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태 이후 필자는 단 한 번도 마스크를 사지 못했다. 그래서 소창으로 만든 마스크에 소창 손수건을 덧대어 쓰고 있다. 매일 빨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다. 코로나는 폐렴형 감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면역력을 높이려 노력 중이다. 우선 잘 먹고, 푹 자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행사와 일정들이 취소되면서 3월 주말을 통으로 쉬는 여유도 생겼다. 면역질환자인 필자에게 그나마 다행이다.

필자는 메르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의 등장이 인간의 욕심에 기반 한 환경재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러스 퇴치에만 집중하고 있는 현대 의료체계는 썩 달갑지 않다. 병의 원인을 단지 병인체에서 찾고,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는 근대 병리학의 틀에는 환자와 더불어 살고, 환자가 속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대의학이 말하는 모든 질병을 박멸하는 위생박멸이 아니라 동양의학이 말하는 ‘병이란 우리 삶과 신체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지혜일 것이다. 병이란 몸이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인 셈이다. 우리 모습을 보자. 겉으로는 위생과 청결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세상을 마구 오염시키고, 입만 열면 과학과 합리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의 위생과 청결 관념 역시 그저 내 눈에 보이는 세상만 깨끗하면 된다. 눈앞에 보이는 먼지는 참을 수 없어도 하천이 오염되는 건 아무 상관이 없고 내 가까이 쓰레기들은 저 멀리, 나랑 무관한 곳으로 보내 버리면 된다는 식이다. 괴질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면역질환자로 10여 년 넘게 살면서 한 가지 터득한 것은 ‘질병과 공존하는 삶’이다. 필자는 현대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이 질병과 10여 년을 공존하면서 질병과 새로운 관계 맺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결국 질병을 고친다는 건 곧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 질병이 필자의 생활과 습관을 완전 바꾼 걸보면 질병과 몸은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삶을 다르게 살도록 추동하는 스승이요, 친구이다.

이노 카렌이라는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질병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신비한 블랙박스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고 “질병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실 어떤 면에서는 삶의 일부로서 필요한 것이다”라고.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공포에 떨며, 감염될까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때,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질병과 공존하는 삶’이라는 새로운 관계의 모색이 필요한 건 아닐까.

인류의 역사에서 질병이 사라지는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세균 혹은 바이러스 역시 함께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질병 치료가 환자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적 욕망의 배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질병과 공존하는 삶’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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