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모든 생명체와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김해규 소장
평택인문연구소

어릴 적 ‘육시럴’, ‘찢어 죽일 놈’ 같은 욕설을 듣고 자랐다. ‘찢어 죽일 놈(능지처참)’은 다섯 마리 말에 사지를 묶고 여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이고, ‘육시럴’은 대역죄인을 고문해서 죽인 뒤 시체를 여섯 토막 내어 각 도道에 보내고 머리는 성문에 효수하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말한다. 명나라에서는 능지처참 할 때 산 사람을 기둥에 묵고 칼로 살점을 도려낸 뒤 마지막에 목을 쳤다고 한다. ‘염병할 놈’, ‘지랄 염병하네’ 는 전염병과 관련된 욕설이다. 염병은 ‘장티푸스’다. 근대 전후만 해도 염병은 호열자, 마마와 함께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보통 1~2주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 두통, 설사, 장출혈로 죽었는데 영양상태가 부실했던 조선시대에는 발병하면 7~8할이 사망했다. 호열자의 다른 이름은 콜레라다. 콜레라는 역신疫神이 가져다줬다고 해서 ‘역병疫病’이라고도 했다. 콜레라를 호열자라고 한 것은 ‘한 번 걸리면 호랑이가 살점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사병은 중세 말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1347년 10월경에 최초 발병해서 1352년까지 5년 동안 유럽인구 1/3을 죽게 만들었다.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특히 전염병은 보릿고개나 여름철에 만연해 굶주림에 면역력이 떨어진 백성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염병이 만연해도 공공의료시스템이 취약했던 조선시대나 중세 유럽에서는 마땅한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기껏해야 감염된 마을을 봉쇄하고 병자가 발생한 집을 불태우거나 죽은 시체까지 태워버리는 극단적 조처만 취했을 뿐이다. 의지할 곳 없던 백성들은 속설이나 미신에 의존했다. 인심도 극도로 나빠졌다. 병든 아버지와 자녀, 아내를 내다 버리는 일도 흔했다. 질병이 인간의 죄罪 때문이라고 호도하는 무지한 성직자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했다. 정치인들은 흑사병을 나병환자와 유태인들이 퍼트렸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려 이들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 전염병의 공포 앞에 종교도, 인간의 도덕성도 무너져 내렸던 시대였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처음에는 팔짱만 꼈던 미국과 유럽에서도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경기 침체로 공공의료와 복지예산을 감축했던 이탈리아는 세계 최고의 사망률을 보이고 있으며, EU가 지향했던 통합의 가치도 무너지고 있다. 경제도 크게 흔들린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도움도 크게 위축됐다. 자본주의적 민영의료체계를 선택했던 미국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극도의 긴장과 공포 속에 떨고 있다. 앞으로 의료혜택이 부족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중남미로 확산되면 얼마만큼의 인명손실을 가져올지 알 수 없다.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떨고 있지만 인간의 대응은 과거 흑사병 때나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나 아베와 같은 정치인들은 코로나19 사태를 악용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고 한다. 공포심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렴치한도 있으며, 상생의 가치보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도외시하는 모습도 만연한다. 어쩌면 일부 강대국들은 자국에서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국내 여론이 나빠지면 종교적 신념이나 이념이 다른 특정 국가를 공격해 여론을 환기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공공의료시스템 구축이 국가와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서 왜 중요한지 깨닫게 했다. 자본주의가 궁극적으로 인간 삶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되묻게 했으며, 모든 자연과 생명체 위에 군림하게 된 인간의 미래가 과연 장밋빛일까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인문학자 존 켈리는 ‘풍요롭고 편리한 삶만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환상이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대로 인간이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려면 자연과 모든 생명체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탐욕에서 벗어나 조금만 가난해져야 한다. 그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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