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3월 19일

700여 명 참관으로 대성황
여학생 우승, 여성교육 필요

 

 

“去 拾九日 土曜에 平澤公立普通學校에서 學藝會를 開催하였는데, 男女 生徒의 優良한 成績은 可히 刮目할만한 하며 工業部 製造品은 頗히 巧妙堅實하여 雖良工大木이라도 此에 不及할지오. 各 科目을 通하여 女子가 男子보다 優勝함을 見하며, 女子敎育이 倍速進步를 可賀할지로다. 當日에 來賓 及 父兄을 合하여 觀光者 無慮 七百人 以上에 大盛況을 呈하였더라.”(『매일신보』 1921년 3월 23일)

초등학교 시절 많은 학생이 즐거워하는 날 중의 하나가 ‘학예회’이다. 학예회의 사전적 의미는 “학생이 음악, 무용극, 낭독 등의 예능 실력을 발표하고 그림, 글씨, 공예 따위의 작품을 전시하는 대회”를 말한다. 한 학년을 마치면서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학예회는 근대 교육시설인 학교가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연원은 1907년으로 거슬러간다. 신문에 의하면 1907년 12월 4일 전주공립보통학교에서 학예회를 개최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1900년대 초 근대적 학교가 설립되면서 대부분 학교에서는 학예회를 개최하였는데, 평택공립보통학교에서도 1920년 3월 19일 학예회를 개최하였다. 요즘이야 학예회는 주로 가을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만 해도 봄에 개최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이날 학예회에는 700여 명의 내빈과 학부모, 구경꾼 등이 참여할 정도로 마을 축제였다.

남녀 학생들은 학업 외에 자신들의 취미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작부 등이 있었는데, 공업부 학생들의 솜씨는 일반 제조품에 버금갈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솜씨는 수량공대목雖良工大木 즉 비록 뛰어난 목공은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비록 아이들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최고의 작품이었다.

다양한 부분에서 남녀 학생들이 자신들의 솜씨를 경쟁하였는데,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우수하였다. 우등상 역시 여학생들이 더 많아서, 여성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는 평택인의 새로운 인식이 아니었을까 한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