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헌데 아직도 그 미망에서 깨나지 못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야당의 핵심 지지자들이 전자개표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고, 몇 만 명이나 미국의 백악관 인터넷 사이트에 재개표 청원 서명을 올렸다는 뉴스도 올라온다. 불행하게도 내가 지지한 후보가 떨어졌다. 왕복 2백여 킬로미터를 넘게 운전하고 투표장에 가서 한 표의 주권을 행사한 내게는 별로 보람이 없는 결과였다. 나는 ‘진보의 영혼을 가진 보수’답게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을 지지했다. 대선이 끝난 뒤 패배를 흔쾌한 마음으로 수납하지 못 하고 여러 음모론을 내세우며 벌인 일부 야당 지지자들의 행태에 대해 눈살을 찌푸린다. 문재인 후보가 졌다는 이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생떼를 쓰는데, 드러난 사실을 의심하면 만 가지 음모론도 펼쳐질 수 있다. 음모론은 그럴싸한 외피로 치장되지만, 그 본질은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고, 사실을 왜곡하고자 하는 병적 심리이다. 나는 작년 12월 19일, 투표하는 날 새벽에 이런 글을 써서 발표했다.

누리에 새 날빛이 환하다.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몇 시간 뒤면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 대통령은 정부기구들을 장악하고 경제·외교·안보뿐만 아니라 의료·연금·복지와 관련한 국가정책들을 정하는 권력을 거머쥔다. 우리는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에게 국민 다수가 동의한 체제에의 강제·억압·복속하는 권력을 부여한다. 이것은 우리 일상을 둘러싼 커다란 테두리로써 개별자의 시시콜콜한 삶과 선택에 관여하고 나라의 운명을 주조(鑄造)하는 막대한 힘이다. 우리가 싫든 좋든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법과 질서를 만드는 대통령의 권력은 현실의 맥락 속에서 엄연하게 움직이고, 각자 작은 삶의 공학과 그 가능성은 이 힘이 미치는 테두리 안에서 나온다. 우리들 작은 삶은 이 큰 정치 공학과 불가피하게 연접되어 있고, 따라서 정치 공학의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상의 영역이란 있을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먹는 밥과 누리는 자유, 더 나아가 삶과 사회의 세목과 본질적 양태가 바뀐다는 뜻이다.
 
그간 대통령 후보들은 유세 활동과 공약 발표, 공개 토론 등을 통해 자신들이 펼칠 정책들과 새 정치에 대한 비전을 드러내보였다. 그 과정에서 날선 공방이 있었고, 불법 선거 행위를 둘러싼 상호비난도 난무했고, 터무니없는 흑색선전도 없지 않았다. 누구는 진흙탕 싸움 같은 혼탁한 선거운동에 피로감을 느꼈고, 누구는 정치 일반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냈지만, 본디 민주주의에서의 선거는 얼마간의 소란이 불가피하게 따르는 축제다. 축제가 고요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말의 성찬(盛饌)들과 그 말의 성찬을 빚어내는 수사학에 숨은 정치적 함의를 음미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기도 했다.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하물며 우리의 존명(存命)과 나라의 운명을 걸머지는 대통령을 뽑는데, 더 세세하게 따지고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왜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하는가? 토마스 제퍼슨은 “문명국가에서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서도 자유롭기를 바라는가?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투표를 기권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발로이고, 결국 이 무관심이 가장 나쁜 정치를 불러온다. 분명한 것은 정치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믿음은 가망 없는 희망인지도 모르지만, 나쁜 정치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는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오직 정치가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정치 허무주의자라도 투표에 나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더러운 것은 버리고 소중한 것은 보듬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자발적 투표 행위 속에 함의되어 있는 것은 내 운명은 내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오늘은 선거를 축제로서 즐기는 날이다. 각자 마음에 점찍어 둔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자. 일자리, 경제성장, 복지, 교육, 북핵, 통일과 같은 나라의 현안들에 대한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피고, 누가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판단하자. 이는 유권자의 권리이고 중대한 의무이다. 아무도 우리 삶을 대신 살 수는 없다. 삶이 그렇듯이 투표 역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신성한 참정권이다.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은 유권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릴 뿐만 아니라 누릴 자유도 버리는 사람이다. 선거는 축제이다! 투표를 해야만 사람답게 살 자유와 더불어 선거라는 자유 민주주의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저녁 6시, 투표가 종료되자 방송사들은 출구조사 결과를 내보냈다. 출구조사는 여권 후보가 앞선다고 나왔다. 나는 차기 대통령이 박근혜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대통령 당선자는 어제 국무총리를 지명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지명한 사람들로 꾸린 인수위는 다음 정부에서 대통령직 승계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예상대로 지지 후보가 영호남으로, 세대별로도 뚜렷하게 갈렸다. 젊은 쪽은 진보 쪽으로, 50대 이상의 세대에서는 보수 쪽으로 표가 쏠렸다. 결국 호남 외의 전 지역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고 50대 이상 세대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내가 보기에, 유권자들이 낯선 최선(모험)보다는 낯익은 차선(안정)을 선택했다고 본다.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과 박근혜가 아버지의 유신정치에 대한 상속자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야당은 박근혜 후보를 낡은 이념, 낡은 정치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했는데, 이것이 일정 부분은 받아들여졌고, 그보다 약간 더 많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게 이번 대선 결과다. 나는 당선자가 아니라 그 경쟁 후보를 지지한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게 나와 내 자식을 이롭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시 거듭해서 새 대통령이 다른 생각,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마저 넉넉하게 끌어안고 덕치(德治)를 펼쳐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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