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전통무예와 역사 알릴 것”


전통무예 연구로 갑옷·병기 제작
축제·드라마 참여, 후학 양성 목표

 

 

 

“어린 시절 체력이 좋지 않아 무예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전통갑옷을 제작하는 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교육기관을 포함한 역사문화테마파크를 조성해 우리의 전통무예와 역사를 알리고 후학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무예를 섭렵하다

평택시 세교동에서 태어난 김대규(53세) 대표는 어린 시절 심장이 좋지 않아 체력을 기르기 위해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사범을 하던 동네 형에게 쿵푸를 배우기 시작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꾸준히 배웠죠”

그가 본격적으로 무예를 섭렵하기 시작한 때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다. 수입으로 여러 도장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 시절 연탄 아르바이트만 3년 정도를 했습니다. 엄청 힘든 일이라 체력 키우기에도 좋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일당이 많았어요. 그 수입으로 합기도, 격투기, 검도 등 다양한 무술을 동시에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군에 입대하고 나서는 특수부대에서 복무하며 특공무술을 연마하기도 했죠”

급기야 경영학도였던 김대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포기하고 1995년 비전동 평택시청 인근에 체육관을 차렸다.

 

입소문 탄 시범공연

김대규 대표는 처음 10년간 지하에서 체육관을 운영했다. 원생들이 많지 않았지만, 제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다고 한다. 본격적인 그의 성공가도는 세교동과 성동초등학교 앞에 각각 합기도장과 검도장을 운영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제 나이 40이 될 때쯤 두 곳의 체육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원생만 200명이 넘을 만큼 잘 됐습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범공연을 다니기 시작했죠”

그는 자신이 졸업한 평택고등학교 체육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행사에서 제자들과 시범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좀 더 획기적인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공연의상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갑옷까지 입게 됐는데 이것이 입소문을 타게 됐고, 평택뿐만 아니라 서울 등 여러 도시에서 초청을 받게 됐죠”

김대규 대표는 이때부터 전통무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무예도보통지>, <무예제보>, <무비지> 등 각종 병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시범공연을 준비하면서 과연 이 무예가 실제 역사적으로 고증이 된 것일까 의문이 들었고, 이때부터 전통무예와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하는 무예가 실제 역사 속 무예와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는 현재의 무예가 일본에 의해 변형되거나, 근대에 들어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체육관을 정리하고, 공연에만 집중하게 됐습니다. IMF 이후 체육관이 점차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공연은 해를 거듭하며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었죠”

 

전통무예 전문가가 되다

김대규 대표는 각종 행사뿐만 아니라, 연극, 뮤지컬, 드라마까지 활동무대를 넓혀갔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진법, 전투 장면 자문과 기획을 맡아 직접 연기자들을 지도했습니다. 당시 ‘무휼’이라는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배우 조진웅 씨를 직접 지도하기도 했죠”

이외에도 <비밀의문> 등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문을 맡은 그는 공연분야에서도 계속해서 기획을 맡아 여러 전통축제에 참여해왔다.

“전국의 전쟁 관련 축제에는 대부분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오산독산성축제’에 참여해 전투 재연, 무예 공연, 권율 재연극까지 모두 도맡아서 했죠. 그 결과 독산성축제는 경기도 대표축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각종 활동을 거듭하면서 김대규 대표의 제작 실력도 날로 향상돼 왔다. 지금은 영화 제작사는 물론, 박물관에서도 재현품 제작을 의뢰해온다고 한다.

“갑옷은 침선과 옷감, 금형, 주물, 인체 등 여러 분야를 알아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료가 없어 너무나도 힘들었죠. 박물관의 경우 벽화 하나 건네주고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갑옷이나 병기가 역사를 고증하는 데 있어 논란이 될 수 있기에 이 부분에 큰 노력을 쏟고 있다. 역사란, 새로운 유물 하나가 발견되면서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100년이 지나도 고증이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 김대규 대표의 마음이다.

조소를 전공한 아들과 함께 갑옷을 제작 중인 그는 더욱 많은 후학을 양성해 우리 민족과 전통무예의 위대함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김대규 대표의 노력이 훗날 전통무예 ‘붐’으로 이어져 우리 전통과 역사를 더욱 사랑하는 하나의 문화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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