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 11일

영업시간은 오후 11시까지
평택경찰서 관리 아래 실시

 

 

“平澤警察署에서는 管內 飮食 營業者에게 營業時間은 午後 十一時까지로 制限하고 從來는 山間僻地에 있는 酒幕에도 酌婦를 두어 一般에 被害가 많았으므로 今後는 平澤, 西井里, 安仲 등 市場에 限하여 每戶 一名 以外에는 許可치 않겠다고 一般 營業者에게 徹底히 周知시켰다.”(매일신보 1938년 9월 11일)

작부酌婦의 의미는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다. 지금이야 별로 쓰이지 않는 용어가 되었지만, 식민지 시기나 문학작품에는 자주 등장하기도 하였다. 작부의 사전적 의미는 ‘술집에서 손님을 대접하며 술을 따르는 여자’를 뜻한다.

식민지 시기 신문기사를 보면 작부와 관련된 연애담이 적지 않게 소개되고 있다. 이들 기사는 대부분 애환을 담고 있다. 유명한 소설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은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산업화와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떠돌이 노동자와 술집 작부를 등장시켜 하층민의 애환과 인간적 유대감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작부는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요인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1938년은 제국 일본이 본격적으로 대륙침략을 감행한 중일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시점으로, 전시체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일상의 통제가 심해졌다. 평택에서도 일상의 감시와 통제가 점자 강화되었는데, 음식점의 영업시간까지 간섭을 받았다. 평택경찰서는 평택지역의 음식점 영업시간을 오후 11시까지 제한하였다.

지금이야 평택은 도시화가 점차 확대되어 옛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1930년대 후반만 해도 높지는 않지만 제법 산들이 있었다. 주막은 주로 산간벽지의 사람이 드나드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으며, 평택은 삼남대로가 지나가는 길목이라 주막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시장 주변에도 술과 음식을 파는 주막이 적지 않았다. 주막은 음식도 팔았지만 때로는 숙박도 가능하였다. 그리고 대부분 작부를 두고 장사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주막의 작부로 인해 일반 사회에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가정의 평화를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평택경찰서에서는 주막에서 그동안 여러 명의 작부를 고용하였던 것을 금지했다.

다만 평택, 서정리, 안중의 시장 일대 주막만 한 명의 작부만 고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일반 사회에도 알려 사회적 불안의 요인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이는 전시체제기에 사회를 통제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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