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평택박물관 건립은 어떻게?
 

역사·문화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기억의 공간’ 체계적 준비 필요

 

박물관, 기억을 수집·수장·연구·전시·교육하기 위해 존재
평택의 역사·문화·민중의 삶 오롯이 담은 뮤지엄이 중요
명망과 실력 있는 건축가 참여, 박물관이 문화유산 돼
국립청주박물관, 건축과 환경의 조화로운 공존 돋보여

 

평택에서 박물관 건립과 관련해 논의되기 시작한 지가 벌써 20여 년이 넘은 듯하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10년이 두 번 지났음에도 박물관 건립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욱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20년은 한 세대를 넘는 시간으로 인식될 듯하다. 그동안 지역의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많은 공약과 논의를 거듭했지만 여전히 미완 상태이다. 평택보다 늦게 논의를 시작한 지역도 있었지만, 이들 지역 중에는 평택보다 훨씬 앞서 박물관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평택시사신문>은 초기 단계에 있는 평택시가 박물관 건립을 추진함에 있어 유념해야 할 점들을 3회 분량의 기획특집 기사로 점검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게 건축된 국립 청주박물관

 

 

■  ‘기억記憶의 공간’이 필요한 이유

박물관은 기억의 공간이다. 도서관이 지식기반을 축적하고 공급하듯 박물관은 기억을 수집, 수장, 연구, 전시, 교육하기 위해 존재한다. 평택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박물관 건립이 논의되었다. 다행스럽게도 6년 전 평택시장 선거에서 주요공약으로 채택되면서 건립이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 박물관 건립은 답보상태다. 부지 이전문제로 설왕설래했으며, 공립 종합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해놓고도 그에 맞는 내용을 확보하지 못했다. 지역의 고유성과 창의성을 담보하는 문제, 인적 인프라 구축도 아직 미흡하다. 박물관 건립이 지지부진한 이 때 초심으로 돌아가 ‘평택공립박물관은 왜, 어떻게 건립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박물관 건립에서 가장 먼저 고려할 사항은 ‘평택지역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확립’이다. 평택시민들 대다수는 ‘평택시의 정체성이 뭐냐’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평택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낮은 편이다. 향후 도시가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평택시민이라는 자긍심과 정주의식도 약해질 것이다. 평택지역에 박물관을 건립해야 하는 이유, 그것도 우선 종합박물관을 건립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종합박물관은 평택의 역사와 지리, 문화, 생산 활동, 민중들의 삶, 평택의 현재와 미래를 한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시설이다. 혹자는 미군기지와 기지촌 문제를 거론하지만 그것은 평택 근현대사의 일부분으로 다루면 된다. 미군과 그 가족들에게 평택을 어떻게 보여줄까를 고민하지만 그것은 평택지역의 역사 문화적 고유성과 독특함을 창의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둘째, 평택지역 문화유산을 수집, 수장, 연구할 공간이 필요하다. 평택지역은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통의 경관은 파괴 변형되고 수백 년 전통의 마을과 민중들의 삶, 유물들도 파괴 유실되었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유적과 유물이 다수 발굴되었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연구할 공간이 없었다.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수집, 수장, 연구, 전시다. 평택박물관은 그와 같은 역할을 담당할 가장 기본적인 시설이다.

셋째, 시민들의 문화복지를 증진시키고 평택을 찾는 관광객과 외국인들에게 평택지역을 객관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은 시민들의 문화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농업, 공업, 상업이 재화를 획득하는 수단이라면, 문화공간은 재화를 바람직하게 사용하여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평택미군기지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평택이란 지역과 평택사람들의 삶을 체계적으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같은 요소를 충족시키려면 국립 중앙박물관 같은 유명한 박물관보다 가장 평택적인 박물관 건립이 필요하다. 평택지역의 역사, 문화, 민중들의 삶을 오롯이 담은 뮤지엄을 만들어야 평택시민들이 배우며 즐길 수 있고, 관광객이나 외국인들도 감동한다.
 

▲ 김수근이 한옥 양식을 잘 살려 설계한 국립 청주박물관 설계도

 

■ 왜, 고덕국제신도시 중앙공원이어야 하나

평택시민들에게 ‘평택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공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 수 인사들은 박물관이 ‘유물 몇 가지 전시하는 공간’ 쯤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평택지역에 어떤 역사가 있고 유물이 있어 박물관을 건립하려 하느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물관의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과거 지역박물관들은 국립 중앙박물관의 모형에 가까웠고 지역적 특색과 창의성이 없다보니 한두 번 흩고 지나면 더 이상 볼거리가 없었다. 관람객의 편의시설이나 휴게공간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관람객이 줄었고 유물들은 박제품이 되었다. 오늘날의 박물관도 기본적으로는 지역 관련 유물들을 수집 연구하고 수장하며 전시하는 기능을 하지만 교육과 체험, 공연, 휴식의 기능도 매우 중요시 된다. 야외박물관이나 카페, 책방, 도서관, 출판기능을 통해 정보이용과 휴식, 힐링 공간도 제공한다. 과거 유물과 간단한 학명學名만 제시하고 마는 전시에서 탈피해 근래에는 유물의 모형을 만지게 하고, 사진과 영상, 가상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느끼며 체험하게 한다. 평택박물관도 유물조사, 설계와 전시계획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이 같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박물관이 시민친화형으로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입지와 건축이 매우 중요하다. 건축은 소장 유물과 콘텐츠의 영향을 받으며 전시계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객관적 이해도 필요하며 박물관의 활용계획도 반영되어야 한다. 관람객들은 유물을 통해서도 영감을 얻지만 건축을 통해서도 많은 영감을 얻는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충청북도 국립 청주박물관에는 김수근의 철학과 청주지역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다. 그러다보니 30여 년이 지난 현재도 유물 뿐 아니라 건축까지 하나의 문화유산이 되어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평택박물관도 이와 같으려면 박물관 설계를 ‘공개입찰’보다는 ‘설계공모’ 방식으로 해야 한다. 명망 있고 실력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건축가의 손으로 박물관이 설계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유산이 된다. 박물관은 입지도 무척 중요하다. 박물관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적지나 유물 발굴지에 입지하기도 하지만 접근성이나 주변 환경을 고려하는 경우가 더 많다.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접근성과 주변 환경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평택박물관은 고덕국제신도시 중앙공원 내에 부지를 선정했다. 고덕국제신도시가 완공되면 중앙공원 일대는 평택시청을 비롯해 평화예술의전당, 중앙도서관, 창의체험관이 입지하는 핫 플레이스가 될 전망이다. 이곳은 평택 구도심에서 5~10km, 평택 전역에서 반경 20km 이내에 위치해 일반 학생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20~40분 내에 접근이 가능하다. 이것은 박물관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장점이다. 더구나 박물관 이용객의 70~80%가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 단위라고 볼 때 접근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혹자는 평택박물관이 중앙공원에 위치했을 때 자연경관을 해치고 교통 혼잡이 발생할 것을 염려하지만, 평화예술의전당이 주로 밤에 공연하고 박물관이 낮에 이용객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원의 경관과 녹지훼손 문제도 건축설계의 묘미를 살린다면 문제보다는 오히려 더 큰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립 청주박물관 사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평화예술의전당, 중앙도서관, 박물관, 창의체험관을 연결하는 지하주차장 건설로 주차문제까지 해결하면 더할 나위 없다.

 

▲ 국립 청주박물관의 특화된 공간 어린이박물관
▲ 국립 청주박물관 전경

 

■ 건립추진위원회와 조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박물관은 문화복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안산시는 다양한 공·사립 박물관을 통해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수도권의 대표적인 난개발지역, 다문화지역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 수원시는 2003년 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해 ‘수원시박물관건립종합계획’과 ‘박물관건립 중기지방재정계획’을 수립했다. 이듬 해 박물관 설계 현상공모를 시작했으며, 행정 절차를 거쳐 2006년에 착공, 2008년 4월에 준공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수원시의회가 ‘수원시 박물관 관리 및 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하여 장기적 플랜과 운영의 기초를 닦았다.

안산시와 수원시 사례를 비춰볼 때 평택박물관 건립은 여러 가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우선 민·관·전문가가 포함된 ‘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구성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원시처럼 ‘박물관건립종합계획’과 ‘박물관건립중장기지방재정계획’도 세워야 한다. 평택시의회는 ‘박물관관리 및 운영조례’를 마련해야 하며, 평택시는 임시수장고를 마련하여 국내외 평택 관련 유물과 소장가들을 파악하고 유물수집과 관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마을이나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마을문서와 민장문서, 민간유물도 확보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박물관 건립을 책임질 ‘박물관팀’을 조직하고 학예사를 증원 배치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행히 평택시에서는 올해 ‘박물관팀’을 구성하고 학예사도 1명을 증원하기로 했지만 문화예술과 문화재 관련 업무를 위해서도 학예사가 1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볼 때 앞으로도 학예사를 두세 명 이상 더 충원해야한다. 그래야만 행정적 영역이 아닌 전문영역에서 평택다운 박물관 건립이 논의될 수 있으며, 재정을 확보하고, 설계공모를 하고, 공간구성과 전시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 국립 청주박물관 전경

‘평택박물관’ 건립을 올바른 방향으로 내실 있게 추진하려면 우선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볼 것을 권한다. 평택시는 평택박물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어떤 박물관을 건립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립하지 않은 채 6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 건립은 일반 공공시설과는 다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건물만 번듯하게 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유물 몇 가지 전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관이 반영되어야 하고, 목적과 비전이 분명해야 하며, 정체성이 있는 유물수집과 정리를 해야 하고, 지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창의적 공간배치와 전시, 박물관 운영에 대한 마스터플랜, 운영과 지원조례 마련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의 박물관이 완성된다. 매우 복잡하고 힘든 일정이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다. 평택시와 지역사회의 힘과 지혜를 모으자.

▲ 김해규 소장
평택인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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