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월 16일

서울·원산 등 전국적으로 창궐
평택에도 10여 명 환자 발생

 

 

“근일 경성 용산을 위시하여 악성 감모가 유행한 다 함은 이미 보도한 바어니와, 경부선 평택에도 습래하여 자못 위험한 바, 십륙일까지 동지 평화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환자가 벌써 십여 명이나 있었는데, 아직 사망자는 없으나 대단 창궐 되는 모양이니 극력 주의함이 가하겠다더라.”(『매일신보』 1920년 1월 11일)

요즘 코로나로 전 세계가 그야말로 난리다. 흔히 혼란스러울 때면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때보다도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는 듯하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할 때 형성된 트라우마가 아직도 당시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고 한다. 전쟁이나 지진 등도 우리 일상생활을 혼란하게 하지만 이번 코로나는 보이지 않는 총성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그럴 정도로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하반기에는 콜레라가 창궐하였으며, 이해 겨울에는 악성 감기가 유행하였다. 1919년 12월 20일자 <매일신보> 신문에 의하면 함남 원산에서는 악성 감기가 창궐하여 매일 수십 명의 환자가 발생하였다. 12월 18일에만 128명이 사망하였으며, 이날까지 전국적으로 731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신문 기사에 의하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에서도 악성 감기가 유행하여 보름 사이에 3만 3932명의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이중 238명이 사망하였다. 그만큼 악성 감기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최근 유행하는 코로나로 2020년 5월 25일 현재 목숨을 잃은 분이 267명인데, 당시 악성 감기는 공포의 질병이었다.

이 공포의 질병 ‘악성 감기’는 경부선을 따라 평택에도 습격하여 목숨을 위협하였다. 1919년 12월 16일까지 평택의 유명한 병원으로 알려진 평화병원에서만 진찰을 받은 환자가 10여 명에 달하였다. 그때까지 사망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평택지역에 창궐할 정도로 크게 유행하였다. 지금이야 성능이 좋은 마스크가 있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마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주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학이 발전한 오늘의 시대가 다행히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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