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선거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선거가 몰려 있는 해다. 본지는 이번 4·11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고 건강한 선거문화 창출을 위해 주요후보들에 대한 정보 제공과 각종 선거관련 이슈들을 취재해 1월 18일(6호)자 부터 4월 18일(18호) 까지 매호에 걸쳐 이번 4·11총선에 관련한 특집란을 편성 진행한다. 이번호에는 민주통합당 평택갑 예비후보로 지면을 구성했음을 알린다.- 편집자 註

 
서민·노동자·농민 출신 정치인이 나와야-고윤수 민주통합당 평택갑 예비후보
초선 도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총선 출마로 방향을 잡고 사퇴한 고윤수(48) 예비후보는 그의 사퇴를 두고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을 의식한 듯 “도의원 사퇴는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총선에 출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에서 많은 정치인이 배출됐지만 그 동안 서민과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치인이 있었습니까?”라며 출마의 변을 표명했다.
고 후보는 진위면 농촌지역 출신으로 과거 한국번디에서 노조위원장을 지내기도 해 자신이 진정 평택갑지역의 서민과 농민, 노동자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1년 7개월 정도, 비록 짧은 도의원 시절이었지만 농림수산위원회, 무상급식특위, 예결산특위 등에서 활동했고, 도의회 내 민주통합당 부대표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큰 정치를 할 자신이 있다고.
“작년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와락센터’가 문 여는데 국비 2억 원, 도비 1억 원을 보태 3억 원을 지원했고, 올해도 도비 2억 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해놓고 나왔습니다. 이 돈은 쌍용차 해고자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고 후보는 진위초·중학교를 거쳐 신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명문대생이 되었지만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워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해 육군 하사로 만기제대한 그는 복학 대신 한국번디에 취직해 사회로 첫 발을 디뎠다.
“제가 노조위원장을 지낼 때는 나눔에 관심을 갖고 노동운동을 했는데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회사가 분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했죠. 일정한 크기의 파이가 생산되면 그것을 생산한 사람들과 회사가 잘 나눠 가질 필요가 있어요. 이것이 받아들여져 노동자들에게는 42.2%의 임금 인상 효과가 나타났고, 회사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했지요”
고 후보는 당시 경영대학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회사의 재무구조를 분석하며 얻어낸 성과였다고 회고했다. 회사를 그만 둔 후에는 우제항 전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민주당 평택갑지역위원회 사무국장도 맡아 조직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스승으로 여기는 우 전 의원이 올 설 특사 제외로 출마가 좌절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우 전 의원의 불출마가 결국 고 후보의 출마에 기폭제요 명분이 된 셈이다. 최근까지 평택갑지역 민주통합당 사무국장을 맡았고 역시 우 전 의원의 최 측근이었던 소기숙 후보와의 치열한 경쟁은 피할 수 없어 정치판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4선 도전을 준비하는 한나라당의 원유철 국회의원과는 친구 사이로 초선시절 도와주기도 했다고. 그러나 3선 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눈에 띄는 업적은 없다며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아 본선에서 만날 수도 있는 후보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말 경기도 시책추진비 5억 원을 가져왔는데 진위면과 서탄면에 농로포장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고 덧붙인 그는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될 것을 다시금 강조했다. □ 허성수 기자


 
결과에 승복하는 깨끗한 정치하겠다-소기숙 민주통합당 평택갑 예비후보

“2012년 4월 11일 평택을 새롭게 바꿉시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출사표를 던진 소기숙(45) 예비후보는 서정리초등학교와 송탄여중 효명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역 토박이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평소 동경하던 수녀로의 삶을 시작한 그녀는 결코 순탄한 청년기를 보내지 못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갑상샘암이라는 선고를 받은 것.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수녀로서의 길을 걷던 그녀가 인생의 전기를 맞은 것은 서른을 앞둔 29세. “이 길 말고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수녀 복을 벗고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소개받은 사람이 정치인이었고 그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시작이었습니다”
수녀 복을 벗긴 했지만 당시의 가치관이 뿌리 깊게 박힌 소 후보는 “부모가 버린 자식, 자식이 버린 부모를 보살피는 등 소외계층을 아우르는데 가장 큰 주안점을 둬 일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아 민주당 사무국장이라고 말하면 알아도 소기숙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용히 일해 왔다는 소 후보는 종갓집 종부로 외며느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주부이기도 하다.
일부에서 “우제항 전 의원의 대리출마” 혹은 “수렴첨정 아니냐”는 비난과 의혹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소 후보는 “갑작스러운 출마인 것은 사실이다. 우 전 의원의 조카며느리라는 특수 관계와 그 분 밑에서 십 수 년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권유는 받았을 지언즉 결심 자체는 제가 한 것이고 제가 선택한 것이기에 모든 과정과 결과 또한 오롯이 저의 몫이다”며 세간의 눈길을  일축했다.
이전에 당이 어려웠을 때도 끝까지 당을 지켜왔다는 소 후보는 평택지원특별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약속이 제대로 이뤄진 것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평택의 발전이 늦어지고 시민들이 힘겨운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 법안을 만들어낸 민주통합당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당선되면 평택지원특별법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정책 차원에서 밀고 있는 지역구 여성할당제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소 후보는 소리 없이 뒤를 밀어주는 주부들의 자원봉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출마 기자회견을 효명고 총동문회 회관에서 한 것도 소 후보가 가진 탄탄한 기반을 확인해주는 힘이다.
“후회 없이 뛰어볼 생각입니다. 당선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미련이 없을 만큼요” 충분히 자신이 있지만 만에 하나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다 해도 민주통합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기꺼이 승복하고 선거운동원으로 백의종군하겠다는 것이 소 후보의 약속이다.
정치적 동지였던 고윤수 예비후보와의 관계에 대해선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은 소 후보는 “제가 출마한 것을 보면 아시지 않나요?”라며 “유권자의 판단을 보면 알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듣도 보도 못하던 이가 후보로 나왔다”는 처음의 평가를 뒤로 하고 여성후보로서 당당히 설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강성용 기자


 
풍부한 행정경험을 경쟁력으로 내세워-이근홍 민주통합당 평택갑 예비후보

이근홍(56) 예비후보는 1956년 평택시 진위면에서 태어나 진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으나 일찍 소령으로 예편, 지방공무원의 길을 걸어온 그는 1983년 경기도에서 내무국 서무과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 지역경제국 상정과, 보사환경국 사회과, 민방위재난관리국 민방위비상대책과장, 재난관리과장, 감사관 등을 역임했다. 1999년 11월부터 여주군 부군수, 도지사 비서실장, 평택시 부시장, 파주시 부시장, 양주시 부시장, 도청 기획행정실장, 복지건강국장, 건설본부장을 두루 거쳐 최근에는 도의회 사무국장으로 근무했다.
바로 이 같은 공직생활을 통해 각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행정경험을 토대로 나라살림을 하고 지역을 발전시킬 최고의 적임자로 자처, 지난달 10일 명예퇴직을 하고 출사표를 던졌다고.
“주민들은 기존 정치인에 대해 식상해 하고 있습니다. 저는 행정경험이 많은 새로운 인물입니다”
이 후보는 평택시에서 2001~2003년에 당시 김선기 시장 밑에서 부시장으로 같이 일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때 평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지역인사들과 교분을 쌓아놓았다고.
그는 민주통합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당의 정책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며 가진 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못 가진 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해 같이 가야 한다며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명박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적이기 보다는 보수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어떤 당에 속한다고 해서 진보냐 보수냐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성향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
육사 출신답게 진보성향의 정치인들이 한국에 주둔한 미군철수를 주장하는데 대해 그는 한반도 안보를 위해 면밀하게 분석한 후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진위면에 들어오기로 된 LG전자에 대해서 이 후보는 지역주민들과 잘 협의해 지역특성에 맞는 모범적인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모교인 진위초교 동문들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 외에 특별한 조직이 없다는 이 후보는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할 당의 공천제도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지난 10일 명퇴 사직서가 수리되자마자 평택선관위에 예비후보로 등록, 그 다음날인 11일부터 자신의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두른 채 거리로 뛰쳐나가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 후보는 경남대학교 경영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연세대 통일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부인도 초등학교 교사지만 국문학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을 정도로 부부의 학구열이 높다. 큰 딸은 홍보회사에 근무하고, 아들은 항공기 기장의 길을 걷다가 현재 특전사로 군복무하고 있다. 홍조근정훈장, 근정포장,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다. □ 허성수 기자


 
국민경선으로 보다 성숙한 공천제도 기대 걸어-최중협 민주통합당 평택갑 예비후보

작년 12월 19일 평택갑지역에서 가장 먼저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최중협(60) 씨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평택시 독곡동에 선거사무소를 차리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지역에서 송북초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동문들과 수성 최 씨 문중이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최 후보는 아파트단지 중심의 주택가를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제6~7대 경기도의원을 지내며 다져놓은 텃밭이기도 해 부지런히 뛰기만 하면 국민경선을 해도 1등할 자신이 있다고.
1951년 8월 25일 출생한 최 후보는 수원고와 동국대 행정대학원을 나왔다. 공군에서 사병으로 근무하고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그는 정치계에 뛰어든 뒤에도 결코 평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1990년대에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 평택갑지역 부위원장, 김대중 대통령선거대책위원 등을 지낸 그는 6대 도의원 선거에서 당적을 바꿨다. 2002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가 당선된 것. 7대 도의원에도 나가 재선에 성공한 최 후보는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나갔지만 낙선해 3선에 실패하고 만다.
최 후보는 이번 4·11 총선을 위해 오랫동안 떠났던 옛 친정인 민주통합당으로 되돌아왔다. 당적을 몇 번 바꾼데 대해서 그는 선거공천과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했는데, 그래도 승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렇게 해명했다.
“제가 승복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당에서 원칙에 어긋난 공천을 하는데 승복할 수 없었죠. 당의 결정이 불합리해 제가 소신을 따라 선택했을 뿐입니다”
사실 그는 1998년 지방선거에서 도의원에 첫 출마하면서 오랫동안 몸 담았던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 아닌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 “당시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을 공천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나갔죠”
당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배를 마신 그는 그 다음 선거부터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바꿔 내리 2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번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또 다시 무소속을 택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다시 2년 만에 신발끈을 조여 맨 그는 최근 새로 출범한 민주통합당이 한결 성숙하고 달라졌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원보다 더 많은 국민들을 참여시켜 중앙당 지도부를 구성했듯이 총선과정에서도 국민들의 지지도를 반영해 투명하게 공천할 것을 믿고 오래 전 떠났던 친정으로 되돌아왔다고.
도의회에서 평택항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최 후보는 6대 도의원 시절 진위면에 가스폭발사고로 파손된 아파트를 복구하는데 8억 원의 도 재난복구예산을 따와 깨끗한 새집으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재입주할 수 있게 했던 일, 7대 전반기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평택의 SOC사업을 위해 파격적으로 예산을 배정받은 일 등을 열거하며 국회에 가서도 국비를 많이 따는 진정한 평택시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자신했다.   □ 허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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