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문학동네

 

 
▲ 이윤정 사서
평택시립 안중도서관

‘모월모일’, 제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무 달 아무 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아무 날’이라고 해야 할까.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고른 책이다. 왠지 무겁지 않고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펼쳐 가장 먼저 본 곳은 목차, 그리고 서문이다. 작가는 풀밭 아무 곳에나 떨어져 있는 모과 한 알을 보고 중얼거렸다. 모월 모일 모과. 책 제목이 되었다. 평범한 날을 기리며 일상을 담아 쓴 ‘모월모일’,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소소한 행복이 찾아온다.

평소 여행을 다닐 때면 여행 가기 한참 전부터 미리 계획을 세워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갈 수 있는 곳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다 가보고 와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면 아침부터 밤까지 이곳저곳 누비며 바쁘게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작년에는 아무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 있었다. 숙소에서 늦게까지 늦잠을 자고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다. 눈을 뜨면 잠시 넋을 놓고 앉아 있기도 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슬슬 준비를 하고 나가 밥을 먹고 근처 바닷가를 거닐다가 모래 위에 한참 앉아있어도 보고, 날이 좋아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보기도 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꽤나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작가가 베를린에서 겪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란 게 이런 거였나 보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시간에 대해 불안해한다. 가끔은 그런 불안감을 떨치고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끔찍한 날도 좋은 날도, 찬란한 날도 울적한 날도,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모두 ‘모월모일’이 아닐지.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시간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가 시인 특유의 깊고 섬세한 관찰을 통해 새로이 발굴된다. 저자의 네 번째 산문집인 이 책에는 ‘겨울 고양이’ ‘하루치 봄’ ‘여름비’ ‘오래된 가을’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계절감이 도드라지는 글이 많으며, 그 계절에만 포착되는 풍경과 소리, 맛과 감정들이 읽는 이의 감각을 활짝 열게 한다. 또한 순환하는 계절이 소환하는 과거의 기억과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가만한 통찰과 그것을 감싼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절묘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내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평범한 일상은 어느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어쩌면 이미 겪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일상 속 평범함을 잘 관찰하다보면 때론 그 속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작가가 모과를 보며 ‘모월모일’을 떠올린 것처럼, 내가 여행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느낀 것처럼. 사실 평범함과 특별함이란 걸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평범한 일상이 어느 누군가에겐 특별한 일일수도, 내겐 특별한 일이 어느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작가의 말처럼 세상엔 절대 평범함도 절대 특별함도 없다. 그런 프레임 속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즐기면 그만이다. 작가의 말처럼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을 멀리 내다버리고 좀 더 빨리, 자신을 좋아해보도록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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