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의 제왕 평택 ‘신고’ 배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을 앞두고 나오는 배는 거의가 다 조생종 ‘장심낭’입니다. 먹어보면 물기가 적고 또 육질에는 모래알처럼 깔깔한 것이 들어있어서 먹을 때마다 입안에서 알갱이가 씹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배 가운데 최고 명품인 ‘신고’ 배는 추석이 지나고 날이 조금 더 차져야 출하됩니다. ‘장심낭’은 육질이 질기지만 저장이 되지 않는데 반해 육질이 연하고 껍질이 얇은 ‘신고’는 겨우내 저장이 됩니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배는 70% 이상이 외국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수출하는 배 가운데 최상품은 ‘평택, 안성’ ‘신고’ 배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배를 수입해 가는 나라는 단연코 자유중국-대만臺灣이었습니다. 
그래서 배과수원에서는 배나무 한그루에서 딴 배만으로도 아이들을 고등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배가 곧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 전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중공中共이라 부르며 적대시했던 중국과 국교를 맺으며 중국의 압력으로 대만-중화민국과 국교國交가 단절되었습니다. 서울 명동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가 걸려있던 자유중국 대사관은 하루아침에 오성기五星旗가 휘날리는 중국대사관으로 문패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대사관 앞에 있던 자유중국에 관련된 기관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며 생활하던 중국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모두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을 탈출했던 화교華僑들입니다.
그런데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우리가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바로 대만으로 수출길이 막힌 배 과수원 이었습니다. 배 값은 하루아침에 '똥값'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 배 값이 싸진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별로 수출길이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웬만한 과수원에서는 배나무를 베어내기도 했습니다.
배나무는 모든 나무들이 그렇듯 땅에 심은 지 3년이 지나면 배가 열리기 시작하지만 가장 품질이 좋고 수확이 많아지는 시기는 15년에서 30년 사이입니다. 그래서 배 과수원에서는 배나무 사이사이에다 새로 배 묘목을 심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묵은 나무를 베어내는 과수개량을 합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 과수원은 4월 말 배꽃이 피면 꽃을 찾아다니며 수정受精을 시키는 벌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4월 말 쯤 배꽃이 피면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꿀을 따러 다니는 벌이 자연스럽게 수정을 시켰지만 벌이 사라지자 사람을 사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일일이 손으로 화접花接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정이 되지 않으면 낙과落果가 심해 거둘 것이 없는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당연히 생산비는 증가하는데 배 값은 오르지 않으니 과수농사는 갈수록 어렵기만 했습니다. 배나무는 자꾸 베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평택배는 예전 명성을 되찾았습니다. 특히 평택 신고배는 열대과일 천국인 동남아시아에서 과일의 제왕 대접을 받습니다. 과일 육즙이 많아 시원하고 뒷맛이 깔끔하기로는 배를 따를 과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평택 배의 우수성은 미국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일조량이 많고 또 우리나라와 토양과 기후가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州에서 한국 ‘신고’배 묘목을 가져다가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배는 맛도 좋지만 상품성이 뛰어나야 하는데 미국에서 자라는 배는 엄청난 인건비 탓에 한국에서처럼 일일이 봉지를 씌울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햇볕을 많이 받은 배는 껍질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두꺼워져 상품성이 떨어지게 되고 또 햇볕을 많이 받으면서 육질도 질겨져 평택배와 같은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배를 생산하면서 배에 봉지를 씌우는 일이 쉽지 않아 일본배도 평택배를 감히 넘보지 못합니다. 일조량이 많으면 과일이 더 커질 것 같은데 지나치게 많은 일조량은 오히려 과일성장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또 우리나라 모든 과일이 다른 나라 과일에 비해 월등하게 맛이 뛰어난 것은 우리나라 지형이 맥반석으로 형성되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택배와 안성배는 품질에 있어 큰 차이는 없지만 평택배가 안성배 보다 더 시원한 맛을 가지고 있는 것도 평택의 지질이 안성에 비해 배농사에 더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과일의 상품성이 높으면 어느 지역에서든 과일나무를 심을 수 있을 것 같아도 과수果樹는 토질과 기후에 민감한 탓에 아무 곳에서나 자라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책에서 배운대로 사과하면 대구大邱-경북이 먼저 떠오르지만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면서 이제 사과는 대구가 아니라 문경을 중심으로 다량 생산되고 있습니다. 
껍질이 두꺼운 ‘장심낭’에 비해 크기가 아이들 머리통만 하게 커지는 평택 ‘신고’ 배는 껍질이 종잇장처럼 얇고 당도가 뛰어나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가을 실과 중에서 겨룰 것이 없는 천하제일의 명품과일입니다. 껍질을 깎아서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으리만치 알이 굵은 평택 ‘신고’배는 먹고 나면 손에 흘러내린 과당菓糖이 마르면서 손가락이 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시원하게 갈증을 가시게 해주고 도라지를 넣고 중탕을 해서 먹으면 기관지 기침과 천식, 해열에 약효가 있는 배.
그런데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배과수원. 
‘평택배’ 명성도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인가요?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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