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활을 많이도 변화시켰습니다. 메르스를 한차례 겪어봤지만 그보다 훨씬 강력해진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서는 그저 조심,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일 깨닫게 됩니다. 서점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코로나에 관한 책들을 쏟아내고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코로나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며 하루빨리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메르스 때는 간혹 쓰던 마스크를 이제는 매 순간 일부러 찾아 쓰게 됩니다. 행여 깜빡하고 마스크 없이 대형마트라도 가게 되면 서둘러 사야할 생필품을 포기하고 돌아서게 됩니다. 한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줌을 활용한 화상회의도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도 극장에 가서 보는 대신 안방에서 보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불편하던 것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즐기는 수준까지 가게 되는 것을 보니 포스트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이전에 지금의 상황을 겪게 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왜 극도로 독해져서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는지, 인간은 왜 속수무책으로 바이러스에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현재를 진단했다면 반성하는 것은 그 다음 순서입니다. 누군가는 생태환경을 무시한 인간의 오만함이 지금의 사태를 키웠다 하고, 누군가는 야수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인간의 욕망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 지식인들이 내리는 그러한 진단은 모두 옳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부터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든 그에 못지않게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복해하며 공감했던 것들을 우리의 아이들은 누리지 못하게 되겠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발견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누리게 될 새로운 행복이 무엇일지는 지금부터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보며 감정을 교감하는 대신 화상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우리의 미래세대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요. 아무 대비 없이 무작정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순응한다면 점차 감정이 사라지고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세상이 되지는 않을까요.

자본을 앞세워 생명을 하찮게 여기던 지금의 모습은 분명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이 하나의 큰 틀에서 존중받으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시장경제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생명과 생명이 살아가는 지구를 위한 일들은 자본주의나 경제보다 상위개념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풀꽃이든 이 땅에 존재하는 생명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우리가 맞이하게 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인류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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