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 세우기는
공공기관 연혁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 김해규 소장
평택인문연구소

얼마 전 자료를 찾던 중 평택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필요한 자료를 찾아낸 뒤 호기심이 발동해 평택소개에서 ‘평택시 연혁’을 검색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내용상 오기誤記와 오류誤謬가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삼한시대 연달부곡이라 칭함’, ‘475년 부산현이라 칭함’, ‘757년 진위현이라 칭함’, ‘진위현을 수주 임내에 편입해 평택현으로 개칭’과 같은 내용이 그렇다.

삼한시대 평택지역에는 정확히 어떤 국가가 있었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직산의 목지국의 영향 아래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고 양성의 신분활국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 때 진위振威 일대를 연달부곡, 송촌활달, 금산과 같은 지명으로 불렀다. 이것을 고구려가 안성천 이북지역까지 지배하면서 ‘부산현’으로 바꿨다. 하지만 평택지역이라면 과거 진위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팽성읍 일대는 백제부터 통일신라 때까지 ‘하팔현’이었다. 아산만에서 밀려든 조수潮水가 여덟 갈래로 고을을 에워싸 유래된 지명으로 파악된다. 서평택지역으로 가면 더욱 복잡해진다.

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당나라 방식으로 바꿨다. 지명地名도 한자화漢子化 했다. 그때 부산현이 ‘진위현振威縣’으로 바뀌었다. 서평택지역의 차성현(용성현), 광덕현도 이 때 만들어진 지명이다. ‘평택현’이라는 지명은 고려 건국 후 나타났다. ‘팽성’이라는 지명도 평택과 함께 사용했다. ‘진위현을 수주 임내에 편입하여 평택으로 개칭’이라는 내용은 말도 안 된다. 진위현을 수주(수원)의 속현屬縣으로 둔 것은 맞지만, 여전히 안성천 아래 평택현은 천안부의 속현屬縣이었다. 서평택지역은 남양도호부에 속하기도 했고 수주水州의 영현도 있었다.

근·현대 부분도 오류誤謬 투성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내용을 보자. “부령 제111호(1913년 12월 29일 공포)로 수원군 일부를 편입하여 진위군이 됨. 마산면, 일탄면, 신고니면, 송장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진위군 송탄면으로 개칭” 위 내용은 이렇게 고쳐야 한다. ‘부령 제111호에 의거 진위군, 평택군, 수원군 일부를 통합하여 진위군으로 함’ 여기에 평택지역 통합을 설명하면서 송탄면의 형성을 넣은 것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소고니면’을 ‘신고니면’으로 오기誤記하면서까지 말이다.

1905년 1월 경부선이 개통됐다. 경부선 개통으로 평택지역에는 평택역, 서정리역, 진위역이 설치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위역은 폐역廢驛됐고 평택역전이 근대도시로 발달했다. 이것이 지금의 근대도시 ‘평택平澤’이다. 평택역전이 근대도시로 발전하면서 ‘평택리’가 신설됐다. 평택리가 성장하자 병남면이 ‘평택면’으로 개칭됐다. 그 때가 1931년이다. 부용면도 1934년 서면과 통합돼 ‘팽성면’이 됐고, 1949년에는 북면이 ‘진위면’으로 개칭됐다. 1938년에는 평택면이 읍邑으로 승격되고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됐다.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평택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공공기관 연혁의 오류誤謬, 오기誤記는 비단 ‘평택시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읍邑·면面·동洞으로 내려가면 훨씬 심각하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에게 평택시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초등 지역사교과서에도 오류가 제법 많다. 평택시를 비롯한 읍·면·동 홈페이지는 평택으로 이주했거나 평택지역을 알고 싶어 하는 시민이라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다. 연혁沿革은 시민이 평택지역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역사지식을 배우는 곳이다. 시급히 객관적 조사연구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공공기관에서 연혁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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