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한겨레출판

 

▲ 양지영 사서
평택시립 지산초록도서관

백만 번 산 고양이가 있었다. 한 생(生)은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로, 한 생(生)은 뱃사공의 고양이로, 또 다른 생(生)은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로…, 한번은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자기만의 고양이로 태어났고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 고양이는 그제야 백만 번의 생(生)을 마감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무심했던 ‘생(生)’은 ‘생(生)’이 아니었으므로 고양이는 다시 태어났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생(生)’은 ‘생(生) 다운 생(生)’이었으므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 생(生)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마음껏 행복을 누렸던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죽음을 응원한다.

당신 옆을 스쳐간 한 소녀가 있었다. 가짜 아빠, 가짜 엄마의 집에서 진짜 엄마를 찾아 도망 나온 ‘엄마 찾아 삼만리’의 한 소녀가 있었다. 보통의 조건에서 태어나 보통의 사람으로 평범한 삶을 산다 해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있으련만, 이 소녀는 그 어떤 사회적 보호막도 걸치지 못한 채 맨 몸 그대로 엄마를 찾아 방황한다. 삶의 매서움을 맨몸으로 견디며 나아가는 소녀의 발걸음의 무게를 감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한때는 다방종업원 언니가 엄마였으면 하다가, 한때는 식당 할머니를 엄마로 여기다가, 한때는 각설이패의 일원으로 엄마를 찾는 엄마 찾아 삼만리의 소녀. 언제나 불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행복이라는 것에 근접하기도 했지만, 엄마를 찾는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만큼 평안한 날도 있었지만, 소녀는 자의든 타의든 결국은 버림받는다. 반복된 버림받음에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얻었고, 소녀답지 않게 무지하고 안타깝게 성숙해 가는 당신 옆을 스쳐간 한 소녀가 있었다.

“나는 엄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원래 내가 살던 곳.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락한 그곳에 다시 들어가 죽을 때까지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냥 엄마인 채로 살고 싶었다.”

이년이었다가, 언니였다가, 간나였다가, 유나였다가 정해진 이름 없이 살았던 소녀의 생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응원한다. 사랑을 모르는 고양이에게 제대로 살아보라고 백만 번 다시 태어날 기회가 주어졌지만, 소녀는 이미 백만 번의 생을 합하여 느껴봄직한 번뇌와 고통을 겪었으므로 그래서 너무 힘겨웠으므로 이제는 마감된 생에서 가만히 휴식하기만을 응원한다.

내 옆을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소녀가 있었다면 너를 몰라봐서, 알아채지 못해서, 아니 모른척해서, 알고 싶지 않아서,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스쳐갔음을 사과한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지만 아직도 좋음의 사각지대에서 전전긍긍 힘들어하고 있을 소외된 우리 사회의 수많은 ‘소녀’가 발견되기를, 사회적 안전망과 제도라는 것이 이런 ‘소녀’를 외면한 것이 아니기를, 또한 안락한 울타리에서 ‘소녀’의 괴로움을 외면했던 이기적임을 반성하며 마음 한구석 먹먹함을 전해주는 이 한 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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