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이미지로 생각해내는 것은 오랜 습관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을 읽을 때는 물론 사람의 말을 전해들을 때도 머릿속에는 그 말들이 이미지로 그려져 남습니다. 누군가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 로드킬 당한 동물을 보았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그 장면을 연상하고 이내 마음이 슬퍼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때로는 이런 습관 때문에 힘이 들 때도 있지만 평생 글을 써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꽤나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나이 드신 분의 삶을 전해들을 때면 간단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음에도 그와 연관된 많은 상상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져 전달된 것보다 더 진한 감동을 받는 경우 등이 그렇습니다. 국도 38호선에 심어진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가을이 오기도 전에 시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 시들어가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난 후부터는 시들어가더라도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고통으로 느껴져 마음이 아련해집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것들에 감정이 동하는 것도 오래 습관으로 자리 잡은 상상력이 발동했기 때문이겠지요. 남들이 특이하다 생각할지 몰라서 이따금 지나가는 말처럼은 “이 죽일 놈의 상상력”이라며 자책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삶에 상상 아닌 것이 없으니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러려니 할 밖에요.

대부분 상상력은 예술가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것을 상상해내는 힘이 없으면 관계가 단절되는 불행이 생기기도 하니 말입니다.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보이지 않고,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정도 보이지 않고, 행복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팽배하면서 사랑이나 행복,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도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표현해야만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가난하면 사랑도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영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말이 정답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감동하는지, 가난하더라도 소박하게 전해지는 따뜻함에도 얼마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는지는 내가 보이지 않은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지에 달린 문제이지 물건으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치가 있다고 추구하는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자본은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삶의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행복이 되어야 하고, 사랑이 되어야 하고, 우정이 되어야 하고,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래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힘을 길러주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살아내야 할 미래가 있기 때문이고, 어른들이 상상력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며 추구하는 가치들이 우리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상상력이 갖는 힘은 우리의 삶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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