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비인후과의원 - 박영철 원장님

무릇 남자들 세계에서 ‘선배’란 하느님과 동기동창생이요 부처님과도 동기생이며 칠성당처럼 모셔야 할 하늘같은 존재입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 악을 쓰고 발버둥 쳐서 겨우겨우 소위 재벌기업에 발은 들여놓았지만 돈도 백도 없어 하는 일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는 살벌한 사무실 ‘전쟁터’에서 오직 학교 문門을 같이 드나든 동창생에 ‘선배’라는 나일론 줄 보다 더 질긴 인연 하나로 무능력자로 찍혀 사경을 헤매며 쫓겨나기 일보직전인 저승길에 접어들었던 후배를 살려내기도 하고 멀쩡하게 숨 쉬며 눈알 똑바로 뜨고 큰 소리 치며 살던 사람도 ‘단칼’에 죽일 수도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구세주 그 분이  바로 선배님이십니다.
‘선배’란?
아귀들만 사는 지옥에서 천당행 직행열차를 탈 수 있는 ‘보증수표’이기도 하고 회사가 다 자기 것인 사장님도, 사장 처남인 전무도, 사장 아들인 상무도… 그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부엉이 골간’ 같이 얽히고설킨 일을 눈 깜짝할 사이에 유쾌, 통쾌, 상쾌하게 단 한방에 해결해주는 도깨비방망이, 슈퍼맨, 마징가제트 그가 바로 선배님입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학교에서 같은 운동장을 쓴 적이 없는 6년 이상 선배란 후배들에게 있어 ‘전설’같은 존재이기도 하지요. 시쳇말로 선배가 ‘까라면’ 군말 없이 까야하고 선배가 ‘뽑으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뽑아야 하는 선배는 ’지존무상‘이십니다.
그러니까 후배 나이가 40이 되었든 50이 넘었든 전혀 후배 자리가 전무이사든 국장이든 따지고 들 것 없이 언제 어느 때던지 간에 감히 ‘맞담배질’을 할 수 없는 성황당 같은 신성한 존재 ’그 분‘이 바로 선배님이십니다.
6.25 사변이 한창이던 피난지 대구에서 아직 채 전쟁이 끝나지 않아 밤이면 멀리서 포탄소리가 들리던 1952년 ‘서울 피난 마포국민학교 대구분교’에 입학한 나는 저녁밥을 먹고 나면 할 일이 없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호롱불 밑에서 연필로 공책에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일론 양말이 나오기 전이라 엄마는 신기료처럼 밤마다 헤진 양말 뒤꿈치를 기우고 겨울이면 내복 무르팍을 기우는 옆에서 졸릴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어려서부터도 머리가 커서 무거운 탓에 항상 왼쪽 팔위에다 머리를 얹어놓고 그림을 그리고 눈만 뜨면 미친개처럼 발길 닿는대도 들로 산으로 혼자 헤매며 놀았습니다.
 
-똑! 똑! 똑!
하루가 다르게 찬바람이 불어 조용한 시간이면 화실畵室 창가에 붙어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초겨울 어느 날입니다. 훤한 대낮 화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 있어  찾아올 사람이라곤 없는데…?
-누구세요?
문을 여니 얼굴에 온통 새카맣게 연탄 칠을 한 아저씨였습니다.
-여기 ‘맥화실’ 맞죠! 
-그런데요?
-박이비인후과의원 원장님이 보낸 연탄인데 어디다 쌓을까요?
연탄아저씨는 막무가내로 문을 밀치고 들어서며 두리번두리번 연탄 쌓을 곳을 찾았습니다.
-아! 여기 괜찮겠네! 어떠세요? 여기다 이렇게 쌓아도 되죠!
아저씨는 대답도 듣지 않고 내려가더니 바람처럼 연탄을 지고 올라왔습니다.
-요즈음 일이 많아 바쁘거든요.  제가 알아서 다 쌓고 갈 테니 일 보세요.
32구공탄 1000장, 하루에 10장씩을 땐다고 해도 겨우내 때고도 남을 양이었습니다. 그 해 겨울이 가고 해가 바뀌어 다시 겨울이 와도 선배님의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네가 좋아서 한 일이니 못 살아도 싸다.
아버지와 마주앉아 밥을 먹을 때마다 저는 아버지에게서 밑도 끝도 없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미 오래전 고인이 되신 아버지는 저에게 육군사관학교를 가라고 권했습니다. 아마도 세상살이가 무능할 것 같은 저를 일찍이 살피시고는 평생 직업군인으로 살면 최소한 가족들 밥은 안 굶기겠지 해서 내린 권고였지만 그것은 저를 잘 알 지 못한 아버지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말을 듣지 않은 죄로 저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생존’도 해결하지 못한 채 월세방을 전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가진 돈도 십 원 한 장 없으면서 호구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아무 대책도 없이 용감하게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쥐뿔’도 없이 그림을 그리며 사는 일이란 바로 고난의 대장정은 시작됩니다. 

돈아豚兒가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 예비고사를 얼마 앞두지 않은 1991년.
-어이! 이 화백畵伯 잠깐 나한테 좀 다녀가지!
전화를 끊자마자 부리나케 박이비인후과 의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진료시간에 환자 보기도 바쁘실 텐데 무슨 연고로 부르시나…?
-이 선생. 큰 녀석 이제 곧 시험이잖아. 그래서 시험도 가까워오고 하니 고기라도 좀 사줘!
선배님은 탁자 위에 봉투를 올려놓았습니다.
-하 하 하… 그 녀석 지금쯤 한참 힘들 거야!
선배님 말씀에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은 일입니다. 선배님이 주신 하늘같은 은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배님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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