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즐기는 프로그램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설민석 강사가 나오는 한국사 프로그램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서인지 그의 강의를 들으면 이해되지 않던 역사적 사건들도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다른 역사학자들의 강의를 들으며 깊이를 꾀한 적도 있지만 정작 큰 맥락을 놓친 경험이 많은 나로서는 그의 강의가 구세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이제라도 조금 채울 수 있으니 바보상자라고 느낀 텔레비전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까봅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학교 역사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앞둔 참 인자하신 분이었습니다. 화도 한 번 안내고 성인군자 같던 그분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심지어 몰래 도시락을 먹어도 상관하지 않으시고 초지일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부족한 수면을 채우는 시간이었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역사는 여전히 고리타분한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랬던 역사를 한 번에 흥미 있는 분야로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설민석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강의를 듣는 것이 좋은 이유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역사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죽은 이들을 현재에 되살려 희로애락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과 온기를 불어넣고 사람들 앞에서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는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그가 전한 제주 4.3사건의 역사를 들을 때는 강사도 울고, 그 앞에 있던 방청객도 울고,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던 나도 한참을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오래 전 제주에서 희생된 분들이 겪었던 일들이 바로 지금 일어난 일처럼 아프고 생생하게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라는 커다란 틀에 적힌 그대로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소시민의 입장이 되어 들려주었기에 강의를 듣다보면 그들은 어느새 나와 같은 인간으로 서있었습니다.

죽은 역사를 당사자의 시각으로 소환해내는 것은 분명 그가 가진 커다란 능력이지만 덕분에 그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우리의 역사가 사라진 것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우리와 연계되어 있음을 깨닫게 했니다. 그 역사로 인해 내 어머니, 아버지가 고통을 받았고, 그 역사에서 나 역시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 역사로 인해 지금 내가 사는 나라가 있고, 그 역사로 인해 지금의 우리가 살아있음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시각에서 쓰이는 것이고, 역사는 되풀이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오늘을 이해하고 싶으면 어제를 살펴보라는 역사에 관한 그 많은 명언들이 이제 더 깊이 있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도 그의 강의를 통해 얻게 된 커다란 소득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기록’하는 자의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자 중에서 역사가가 태어나지 않는 한, 사냥꾼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냥꾼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승자에 의해 기록되는 역사적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소한 이들이 소소하게 적는 기록이 그 어떤 역사가의 기록보다 진실하고 중요하다는 것도 그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다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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