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미/빌리버튼

 

 

▲ 이다솔 사서
평택시립 장당도서관

낯선 곳에서 안정감을 찾으려고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살면서 몇 번 있었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방문했을 때, 새로운 직장에 입사했을 때 등등…. 처음 보는 환경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아는 사람을 발견하거나 먼저 다가와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서영이도 이런 상황이었다. 새로운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 이런 불안함을 덜기 위해 옆자리 윤정과 말해보니 말도 마음도 잘 통하는 것 같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윤정은 현지와 그 무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영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던 윤정과 멀어지고 반의 실세라 불리는 현지와 친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가끔은 어떤 행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내가 그 무리에 속하기 위해 나를 죽이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 무리가 힘이 세고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곳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서영은 사실 윤정을 좋아하지만 실세인 현지의 무리에 끼기 위해 윤정과 멀어지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책을 현지가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하는 척하며, 좋아하지도 않는 피구를 현지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열심히 한다. 현지 앞에서 서영이는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 소설에서 피구라는 것 자체에도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서로 팀을 나누고 공을 던져 상대를 맞혀 아웃시키는 것, 라인에 속하면 인(in)이 되고 라인에 속하지 못하면 아웃(out)이 되는 것. 요즘도 자신이 속한 무리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상대를 배척시키며 경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우리는 여기에 열정을 더 쏟는 게 맞는 것일까. 서영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전학 온 초등학생으로 시작해 결국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현재의 우리를 살피게 하는 책, 바로 <피구왕 서영>이다.

서영은 짝 윤정이 마음에 들었다. “안녕, 나는 최윤정이야.”라며 먼저 인사를 하던 말씨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사람을 탐색하거나 힘겨루기를 하려는 피곤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말투가 좋았다. 게다가 전학 첫날이라 점심시간이 걱정인 자신을 부담스럽지 않게 구제해준 윤정의 배려심도 좋았다. (p.27)

현지의 장난에 이윽고 아이들도 서영을 피구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유치한 별명에 머쓱해져 장난치지 말라며 얼굴을 붉혔지만 내심 아이들의 관심이 싫지만은 않았다. 피구왕이라고 놀려대던 아이들의 말과 표정에서 현지의 인정을 받는 이서영, 현지의 곁을 차지한 이서영에 대한 궁금증과 부러움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p.65)

체육 시간의 피구 경기는 즐거운 피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피구,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인정받을 수 있는 피구, 마지막으로 유현지라는 감독관 아닌 감독관이 있는 피구. 서영은 피구왕이 아니라 ‘피구 노예 서영’이 된 것 같았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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