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은 언제나 ‘현재’라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하는 현재는 긴 시간이 아니라 아주 짧은 ‘찰나’입니다. 시간은 언제나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현재라고 느끼는 순간도 이내 흘러가서 과거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인간의 몸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에 머물러 있는가 하면 어느새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 미워하고, 증오하고, 노여워하는 등 제멋대로입니다. 또는 어느새 미래로 달려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걱정이나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끌어냅니다. 과거나 미래에서 끌어온 사랑, 노여움, 미움, 불안, 두려움, 증오, 행복 등의 감정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몸을 끝없이 괴롭힙니다. 잊으려 해도 쉽지 않고 그러다보면 술에 의존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몸을 위태롭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몸이 아닌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몸은 언제나 현재를 살 수밖에 없는데 반해 인간의 감정은 언제나 과거나 미래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과거의 감정들이 현재의 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셈이지요. 노동을 해서 몸이 힘든 것은 잘 쉬고 잘 먹으면 낫지만, 감정이 힘든 것은 아무리 쉬어도 잘 낫지 않습니다.

‘미움’이나 ‘증오’는 과거의 경험이 내 마음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입니다. ‘걱정’이나 ‘불안’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던져놓은 감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과거나 미래의 감정의 찌꺼기들로 인해 괴롭고 힘든 현재를 살아갑니다. 

몸은 현재를 살고 있는데, 내 마음 속에 있는 감정들은 현재와 상관없는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다면 그만큼 현재를 충분히 느끼거나 충실하게 생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구도자들은 명상을 통해 자꾸 과거나 미래로 향하는 마음을 현재로 가져와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그 마음 안에서 요동치는 감정들 때문입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를 충분히 즐기는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현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 감정들이 자꾸 현재의 나를 괴롭히면 그만큼 삶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서 온 감정을 잘 떼어내어 훌훌 떠나보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 감정을 현재에 붙잡아두고 괴로워한다고 해서 지난 일들이 다시 돌아오거나 미래가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미움이나 증오, 불안이나 두려움의 감정들이 있다면 현재에 붙잡아두지 말고 잘 떠나보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다음 현재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그 감정에 충실히 순응하는 것이 보다 성숙한 삶의 태도이며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지름길입니다.

절망은 벼랑 끝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절망에 닿아 있으면 그곳이 바로 세상의 끝이고 벼랑입니다. 현재를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만큼 현재의 몸과 현재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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