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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 기자가 만난 평택사람 : 현필경 / 미군기지환수연구소장
허훈 기자  |  ptsisa_ho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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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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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사건·사고 널리 알릴 터”

 

학생·노동 운동 넘어 미군기지 투쟁
미군기지 1인 시위, 모니터링 전개

 

   
 

“미군기지에 대해 아직도 많은 분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미군기지 모니터링 활동을 펼치고 관련한 사건·사고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학생운동, 투쟁의 시작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현필경(51세) 미군기지환수연구소장은 어린 시절 섬에서 나와 육지에 정착하기 위해 무엇보다 학업에 열중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행정고시를 봐서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그것만이 육지로 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학업에 열중한 그는 결국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행정학을 전공한 현필경 소장은 대학 입학 직후 학생운동 현장과 마주했고 이내 합류했다.

“입학할 당시 학교에서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기숙사에는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죠. 1987년 신입생 당시 총학생회 집회에 참석했는데, 주변 학교 학생들까지 수만 명의 학생이 광화문을 향해 행진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운동권에 합류한 그는 제주도에서 병역을 마친 뒤 복학해 과 학생회장과 단과대 부회장, 총학생회 등에서 활동하며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을 전개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 끝에 사회 부조리를 바꿔야겠다고 다짐했죠. 실현 가능성에 따라 무엇을 도전하고,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노동운동을 시작하다

1994년 대학 졸업 후 노동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부천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현필경 소장은 3개월 정도 근무한 뒤 그해 6월 평택으로 내려왔다.

“노동자가 앞장서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노동자가 많았던 평택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경동보일러에 입사해 6개월 만에 해고되기도 했죠.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알아챈 회사에서 대학 졸업을 기재하지 않았다며 학력 위조를 이유로 들어 해고한 것이었습니다”

해고된 이후 그는 평택민주노동자회에서 노동상담 업무를 보기도 했다.

“IMF가 터진 뒤 매우 많은 사람이 해고됐는데, 이들과 함께 노동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때 노조가 있어도 회사가 불안정하면 소용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지역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현필경 소장은 결국 2001년 5월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지역노조 활동을 시작하자 상공회의소를 비롯해 지역 사업주들에게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교섭하기가 매우 어려웠죠. 축산 육가공업체와 관련해 투쟁하던 당시에는 일부 불법적인 행태를 청와대에 고발해 업계가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미군기지에 맞선 투쟁

현필경 소장의 미군기지 관련 투쟁 활동은 2000년 12월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내려온다는 기사를 보고 난 직후 참여한 서명운동이 시초가 됐다.

“당시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을 했습니다. ‘한평사기운동’을 했던 기억도 있죠”

그는 당시 정부 정보기관에서 동태를 살피는 주요 인물 중 하나로 항상 감시를 받았다.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국책사업이다 보니 정부로서는 평택에 미군기지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구속되기도 했죠. 저도 3차례에 걸쳐 연행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했어요. 결국 3개월간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현필경 소장은 풀려난 뒤 경기남부평통사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015년 탄저균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미군기지 관련 감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탄저균 사건이 발생하고 다음 해인 2016년에는 사드 문제가 연이어 논란이 됐습니다. 결국, 사드 배치가 성주로 확정되면서 최종적으로 여러 단체가 함께 평택평화시민행동을 결성하게 됐죠”

그는 미군기지와 관련해 파생되는 범죄, 환경오염, 방위분담금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유럽과 오키나와 등지를 다녀오며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한 끝에 2017년 11월 미군기지환수연구소를 만들었다.

“오키나와에서 한 활동가로부터 미군과 관련해 투쟁을 벌인 현지 사진을 받았고, 이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전국을 돌며 소개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 활동이 미군기지환수연구소를 만든 계기가 됐죠”

지금도 매일 평택지역 미군기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인 현필경 소장은 평택평화시민행동 집행위원으로서 미군기지 감시 활동 또한 매주 펼치고 있다.

앞으로도 주한미군 관련 감시 활동을 계속할 예정인 그는 주한미군 사건·사고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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