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창비

 

 

▲ 김정 사서
평택시립 배다리도서관

“장류진의 소설에 등장하는 산뜻하고 담백한 인물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의 작고 평범한 기쁨을 포착해낸다. 그렇다면 장류진의 소설과 더불어 우리는 이제 한국문학의 개인에 대해 이렇게도 사유해볼 수 있겠다. 이 사회에서 을이자 약자인 여성, 청년, 노동자들이 특유의 생존감각으로 시스템을 체화하고 탄력적으로 구부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p.231 해설 中

회사에서 운영 중인 중고 거래 어플에 글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거북이알’의 정체를 알고자 만남을 가진 ‘나’, 카드회사 공연기획팀 소속으로, 유명 뮤지션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고 특진을 약속받았으나 개인 SNS에 공연 소식을 가장 먼저 올리지 못해 토라진 회장의 심술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대신 받게 되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영리하게 활용해 나름대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거북이알’의 기막힌 사연을 담은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소설이다. 

결혼식을 3일 앞둔 날, 3년간 교류가 없었던 직장 동기 빛나 언니의 연락을 받고 청첩장 약속을 잡게 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잘 살겠습니다〉에서는 빛나 언니의 독특한 캐릭터가 흥미로운 한편 주인공이 그녀를 지켜보며 심경 변화를 겪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작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웹사이트에서 SNS 돌풍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먼저 들렸다. ‘대형 신인’이라고, ‘새로운 한국문학의 등장’이라고들 평이 자자했다. 그래서 생긴 호기심에 펼쳤던 책은 페이지 마다 잘게 녹아있는 재미와 통찰, 지금의 우리를 적확하게 포착해낸 예리함이 엄청난 흡입력을 발산했다. 

표제작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잘 살겠습니다〉이다. 입사동기와 결혼을 앞둔 회사원 ‘나’는 ‘축의금 오만 원 정도의 사이’인 빛나 언니와 청첩장 약속을 잡게 된다. 알고 보니 결혼준비로 정보가 필요해 연락해온 거였으며 결혼식에는 오지도 않고 자신의 결혼식 청첩장만 ‘나’의 키보드 밑에 놔두고 가버린다. ‘나’는 빛나 언니의 결혼식 답례 떡으로 받은 경단을 먹으며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다.

빛나 언니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새우튀김이 더 많이 들어 있는 덮밥을 먹으려면 마땅히 ‘특’을 주문해야 하고 그에 해당하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이 세계의 약속임을 잘 모르는 디즈니 속 ‘라푼젤’ 같은 동료. 얄밉고 답답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사람. 직장에서 한번쯤 있을 법한 ‘빛나 언니’와 야무지고 눈치 빠른 ‘나’와의 관계가 ‘청첩장’을 중심으로 사회생활에 대해 얘기한다. 셈과 눈치, 호의와 그에 상응하는 대가라는 암묵적 원리가 지배하는 이 현실에서 ‘나’ 또는 ‘빛나 언니’로 그려지는 개인이 그리고 ‘여자’가 생존하는 방식이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매우 현실적이지만 딱 적당한 만큼만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소설 안에는 개인의 고군분투함, 소소한 치열함, 성차별에 대한 무기력한 분노, 동료로서의 연민이 담겨 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눈치 빠른 센스를 지닌 이 책을, 지금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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