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누구나 고독하기 때문이다. 낯선 것들과 대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공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행위도, 비밀스러운 그 무엇도 아니겠지만, 나는 어쩐지 고독했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에 의해 구석으로 함부로 내팽개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편하고, 수치스러웠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는 없었던 탓도 있다. 납득이 가는가? 이 지구에 막 도착한 한 신생아의 고독이?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는 이 세계에서 나는 혼자다. 혼자라는 자각과 동시에 고독이 쇠꼬챙이처럼 날카롭게 몸을 꿰뚫는다. 미처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피도 나지 않는 그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찰나에 눈에서는 눈물이 솟는다. 나는 깨닫는다. 고독하니까, 사람이다!

고독이 삶의 희귀한 사태는 아니다. ‘고독한 개인’은 어디서나 발견되는 흔한 현상이다. 고독의 본질은 ‘혼자’라는 데 있다. 악의 진부함에 물든 무리에게서 떨어져 ‘혼자’ 떠돌 때, 낙오자의 느낌을 갖는 건 불가피하다. 무리를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새벽에 나는 고독했다. 그래, 이 새벽의 빛과 어둠, 바람에 부스럭거리는 마른 풀 소리, 일찍 깬 수탉의 울음소리, 교접하는 자들의 저 짐승 같은 신음들, 죽어가는 자의 처절한 단말마, 신생아들의 울음소리를 남김없이 기억하마! 나는 이 고독으로 빚어진 단 하나의 문장을 완성할 것이다. 흙벽을 긁어 입에 털어 넣으며 나는 내 뼛속에 고독의 문자 하나하나를 각인했다. 내가 기댈 수 있었던 위안은 사람은 고독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독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된다. 다만 사람들은 제가 고독하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고독하다는 것이 어쩐지 내면의 나약성을 드러내는 징표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고독은 나약함이 아니다. 고독한 순간은 내면의 견인주의(堅忍主義)를 키우는 계기적 순간이다. 고독한 자만이 강해질 수 있다. 고독이 올 때 겁먹지 말고 그것을 회피하지 말자.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씩씩하게 받아들이자. 혼자 밥 먹고, 혼자 일을 도모하고, 혼자 잠든다. 나는 나를 낳은 고독의 태반을 삼킨다. 나의 고독은 나의 명예!

그 고독 씨가 어느 날 아침 내 문을 두드렸다.
“혼자 있기 싫어.” 고독 씨는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무슨 고독이 그러냐?” 내가 말한다.
“날 뭐라고 비난해도 좋으니 나와 함께만 있어줘.” 고독 씨의 표정이 한없이 불쌍하다.
“고독이라면 고독답게 굴어. 왜 이래? 아마추어도 아니면서.” 나는 쌀쌀맞다.
“난 혼자 있는 게 두려워. 불안이라는 도끼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내 이마를 찍어!” 고독 씨는 사뭇 애절하다.
“고독의 가문에서는 혼자 있는 걸 오히려 영예롭게 여겼어. 혼자 있는 게 두렵다는 건 고독답지 않아. 고독의 가문이 쌓아온 명성을 갉아먹는 짓이야. 한마디로 더러운 행위지.” 나는 더욱 쌀쌀맞다.
“혼자 있으면 죽을 것만 같은데.” 고독 씨가 헐떡이며 말한다.
“그래도 견뎌봐. 넌 고독이잖아.” 나는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저 고독 씨의 눈에 가득한 불안을 보라. 고독 씨의 영혼은 불안하다. 고독 씨야말로 진짜 고독한 처지다. 내가 그걸 안다고 해서 고독 씨를 어떻게 해줄 수는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독 씨는 바로 내 그림자니까.

고독은 내면 자원을 소모시키는 사태가 아니다. 고독을 재능의 도약대로 삼아라. 고독은 문명발달과 모든 예술 창조의 원동력이었다. 고독이 없었다면 파르테논 신전도, 타지마할도, 석굴암도, 스톤헨지도, 금강경도, 코란도, 성경도, 우파니샤드도, 천부경도 없었을 것이다. 고독이 없었다면 예수도, 부처도, 바울도, 가섭도, 단테도, 괴테도, 퇴계도, 다산도 없었을 것이다. 고독은 어머니, 대지, 하늘이다. 고독이 민주주의와 시장과 학문과 예술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바다. 나는 고독의 자궁에서 나와 고독을 머리에 이고 고독을 딛고 꿋꿋하게 서 있다. 내 안에 고독이 울울창창하다. 내 안이 도서관이라면 고독은 무수한 장서(藏書)들이다. 나는 날마다 서가에서 고독의 장서들을 꺼내와 읽는다. 고독의 정직함으로 세계를 응시하라. 고독의 통찰력을 빌려 써라. 고독의 초연함으로 세계의 진부한 악들을 무찔러라. 고독의 하찮음으로 통속의 권태와 싸워라. 고독의 용광로에서 정신을 단근질을 하라. 고독의 처절함으로 노래하라. 고독의 신성함이 말로 일상의 범속함으로 헐벗은 나를 풍요하게 하리라. 고독이 되어 사막을 고독하게 횡단하라. 고독으로 세계에 침례를 베풀고 세계를 나락에서 구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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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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