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문교와 평택 문화유산이
필자에게는 살아 숨 쉬는
지적 자산이자
성장을 견인하는 은유

 

▲ 김인국 센터장
외교부 평택SOFA
국민지원센터

평택에서의 생활이 2년이 다 되어 간다. 외교부에 들어와 보통 2~3년 주기로 임지를 옮겨야 했기에 어느덧 평택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임지로 향해야 하는 날이 성큼 다가왔다. 평택 생활이 너무도 좋았기에 떠날 때가 다가오니 한동안 잠잠했던 가슴앓이가 슬금슬금 도져온다. 평택을 퍽이나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서 생활하면서 겪은 소소하지만 소중했던 경험을 나누어 보고 싶다.

먼저 필자는 평택에 와서 자가용 없이 생활했다. 사무실로 출퇴근할 때 일부 구간은 버스로, 또 일부 구간은 걸어 다녔는데, 그중 팽성읍과 군문동을 이어주는 군문교를 자주 걸어 건너는 것은 남다른 즐거움이었다. 다리를 건너며 지역사회와 주한미군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다짐도 수없이 하곤 했다. 다리를 건너며 필자의 평택 생활 중 가장 소중한 결실 중 하나인 <평택시민을 위한 일상영어> 소책자 시리즈를 평택시국제교류재단 평택영어교육센터와 공동 발간하려는 구상을 하게 됐으니, 군문교야말로 필자에겐 축복의 다리임이 틀림없다. 이 소책자가 의미 있었던 것은 지난해 외교부에서 미군기지 인접지역 주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필요가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구체적 노력의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책자가 평택이 글로벌 도시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작은 밀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가용 없이 생활해도 큰 불편이 없었지만, 필자의 마음이 이끌렸던 평택에 산재해 있는 여러 문화유적지를 대중교통 수단에만 의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보통 문화유적지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고 최소한 한두 번은 갈아타는 수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해 가을 현덕면 덕목리에 있는 심복사를 답사하러 갈 때는 별 불편 없이 버스를 타고 찾아갔다. 심복사에 들어섰을 때 법당 밖 마당에서 주지 스님의 염불을 들을 수 있었다. 예불이 끝난 후 보고자 했던 국가지정 보물인 비로자나 불상을 감상하고, 또 절에서 주는 절밥도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데 문제는 버스가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이었다. 외진 곳이라 택시도 호출되지 않았다. 결국 다소 한기를 느끼게 하는 가을바람을 견뎌내며 두세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신숙주 사당을 답사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이상 걸려 청북읍 고잔리에 갔었다. 사당을 관리하는 종손한테 전화하니 지방에 내려가 있는 중이라며 돌아갈 테니 두세 시간을 기다려 달라고 했다. 결국 사당 근처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후 돌아온 종손의 도움으로 신숙주 영정을 감상한 후 신숙주 선생의 생애와 그 후손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료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러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접하며 고생해서 찾아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지에 나가 있던 사람을 기다리고,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들이 그때는 고생이었으나, 막상 평택을 떠날 날이 다가오니 필자에게 가장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이 됐다. 머지않아서 평택을 떠나도, 사색의 날개를 펼치며 건너곤 했던 군문교와 다리품을 팔아 답사한 문화유적지들이 적어도 필자에게는 살아 숨 쉬는 지적 자산이요, 성장을 견인하는 은유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때론 편리함이 추억 만들기와는 반비례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필자가 자가용을 구입해 문화유적지 답사를 두루 다녔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만큼의 추억이 생겨났었을까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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