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오래도록 모시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동행 제1회 평택효자상 수상
2020년 연말 민주평통 대통령상 받아

 

 

“부모님을 모시면서 특별히 효도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죠.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갈 계획입니다”

 

역경을 이겨내다

김성일(64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평택시협의회 지회장은 황해도 연백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부모님은 피난을 오면서 충청남도 서산에 정착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서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죠. 중학교는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인천에서 다녔는데, 이후 사업이 도산하다시피 망하면서 모두 정리하고 정착한 곳이 평택이었습니다”

인천과 아산 둔포를 오가며 배를 키우던 아버지의 사업은 평택호방조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됐고, 그의 가족은 포승읍 만호리에 정착했다.

“처음엔 남의 집 일을 도우면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오로지 새참을 얻어먹기 위해 남의 논일을 돕기도 했어요”

김성일 지회장은 아버지, 형, 동생과 함께 어업 활동을 하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아버지는 어업을 접었고, 형은 돈을 벌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

“이때부터 차남인 제가 부모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저는 친구와 함께 어업을 하면서 실뱀장어를 잡기 시작했죠”

그는 1983년 아내와 결혼했다. 처음엔 없는 형편에 겨우 집을 얻어 포승읍 신영리에 살림집을 꾸렸다.

“장인어른께 폐물 대신 받아온 현금을 종잣돈으로, 살림살이를 늘렸습니다. 처음엔 한우 송아지를 사서 키운 다음에 소 값이 올랐을 적에 팔아 이윤을 남겼죠. 또 1985년도에는 농어민후계자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아 배를 사고 땅도 샀습니다”

 

어민을 위해 나서다

김성일 지회장은 어업을 하면서도 소를 키우며 부지런히 일했다.

“바다에 나가 실뱀장어를 잡다가도 소 밥때가 되면 육지로 와 밥을 주고 다시 바다에 나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땅도 사고 건물도 사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죠”

그는 일만 열심히 했던 것이 아니라, 동네 어민들에게 일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1988년 만도기계 공장이 들어올 당시에는 피해를 본 신영리 어촌계 양식장을 위해 어민대책보상위원장을 맡아 보상을 받아냈고, 이후 평택항이 들어설 당시에는 평택항보상대책위원회와 평택군대책본부 등에서 활동하며 지역민과 함께 보상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후에는 평택수산인회 회장으로 6년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민들의 많은 민원을 평택시에 전달했고,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어민들의 불편을 행정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일 지회장은 평택시의 추천으로 2011년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9월 지회장직을 부여받았고, 2020년 연말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분단된 국가지만, 곤궁한 북한 주민을 위해서라도 수산업·농업·축산업 차원에서 민간 교류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부모님과 함께한 일생

김성일 지회장은 오랜 기간 군에서 일한 형님을 대신해 부모님을 모셔왔다. 그의 아버지는 1923년생, 어머니는 1930년생으로 이미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다.

“힘든 일도 있었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부모님은 말 그대로 부모님이니 모셔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겐 아들 둘이 있는데, 다행히도 이 두 녀석이 주말이면 찾아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살뜰히 모시고 있어요”

인성교육은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들 형제도 부모님을 보셔온 그의 일상을 보고 자라왔기에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뤄졌다.

“막상 모셔보니까 크게 힘든 점은 없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일이 생길까, 그게 제일 걱정이죠”

그래서인지 김성일 지회장은 부모님 방에서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간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김성일 지회장은 지난해 말 사단법인 더나눔과 평택시사신문이 공동 주최한 ‘아름다운 동행 제1회 평택 효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실 부모님을 모셔 온 것은 제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내가 이해하고, 도와줬기에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었죠”

지역사회에서 여러 활동을 이어온 것도 모두 아내의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김성일 지회장은 수상의 영광을 아내에게 돌렸다. 계속해서 부모님을 모실 계획이라는 김성일 지회장의 바람처럼 그의 부모님이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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