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필기시험을 치른 후 주말을 이용해 평택시노인전문요양원에서 실습을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질 않습니다. 어르신 대부분이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들이었는데 그곳에서 실습생이 해야 하는 일은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개는 일, 어르신 목욕을 시킬 때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는 일, 식사시간이 되면 어르신 식사를 보조하는 일, 식사가 끝나면 치아를 닦아드리고 뒷정리 하는 일, 어르신들과 놀아드리는 일 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어르신들의 기저귀를 가는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요양보호사 옆에서 새 기저귀를 건네주거나 변이 담긴 기저귀를 둘둘 말아 한쪽으로 치우는 일 정도를 했는데, 평소 비위가 좋은 편이라 생각했던 나의 자부심은 실습 첫날부터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기저귀를 갈아본 경험이 고작이었던 내게 어른의 수북한 대변이 담긴 기저귀를 가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냄새였습니다. 덕분에 석 달 정도의 실습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는 거의 밥을 먹을 수가 없었지요.

치매어르신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로 감정이 표출되곤 했습니다. 억센 주먹으로 갑자기 세게 때리는 분도 있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앉아만 계시는 분도 있고, 계속 잠만 주무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어르신들이 계셨지요.

주무시는 동안은 마치 아기가 잠든 것처럼 평온했지만 깨어있는 시간 동안에는 삼시 세끼 먹고, 양치하고, 놀고, 씻고, 배변활동을 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척척 처리하는 분들은 바로 요양보호사들이었지요. 아무리 생계라 할지라도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작고 말 못하는 아이 하나를 돌보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 큰 어른을 아이처럼 돌본다는 것은 그보다 몇 배, 몇 십 배 힘든 일이니까요. 

최근 병든 부모를 모시는 지인들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부모도 직접 모신다는 것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물며 병든 부모를 모시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지요.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올해 아흔둘이 되신 어머니를 모시면서 “화장실 혼자 오가는 일이 천하를 손에 거머쥐는 일보다 더 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가슴 찡한 글을 SNS로 전했습니다. 또 한 지인은 이제 팔십대 중반이 되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고 있습니다. 한동안 못 본 사이 체중이 너무 줄어서 그간의 고통을 그대로 방증하는 것 같았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분들에게도 말 못할 사연들이 넘쳐나겠지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어쩌면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는 현실 앞에서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차마 힘내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어깨를 두드려주거나 그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현실과 마주한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점점 고령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이런 일들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생각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