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1리 주민 화합이 최우선”

 

올해 네 번째 이장 임기 시작
유능한 후배들에게 물려줄 터

 

 

“올해 네 번째 이장 임기를 시작해 2022년 말까지 홍원1리 이장을 맡게 됐는데, 이번 임기를 마무리하면 유능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계획입니다. 그때까지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예요”

 

피난민 2세로 태어나

박상의(69세) 평택시 포승읍 홍원1리 이장의 부모님은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길에 올라 강화도 교동면에서 그를 낳았다.

“교동도는 강화도 옆에 달린 작은 섬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나 4년 정도 살다가 부모님과 함께 평택으로 내려왔죠. 평택에 와서도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의 홍원1리에 터전을 잡았습니다”

당시 홍원리 일대에서는 피난민을 대상으로 한 간척사업이 활발히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홍원1리는 간척사업의 중심지였다.

“아버지와 형님은 당시 대창막이를 나갔습니다. 간척사업에 참여하면서 돈을 벌었죠. 아버지는 땅을 얻어 농사를 짓기도 하셨습니다”

당시 홍원리 일대에는 원주민보다도 피난민이 몇 배 더 많이 거주했다. 집과 옷은 제쳐두고 먹을 것이 부족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을 직접 겪기도 했다.

“정말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松肌를 벗겨내 껌처럼 씹어 먹곤 했습니다. 그러면 송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변을 볼 때 정말 똥구멍이 찢어지는 것을 실감하곤 했죠”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

박상의 이장은 중학교 졸업 후 안성농업전문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중학교 졸업장을 따는 것도 힘든 시절이었지만, 학구열이 강했던 아버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마을 제 또래 중에서는 중학교에도 단 세 명만이 진학하던 때였습니다. 그 정도로 먹고살기가 어려웠죠. 저는 아버지의 지원으로 멀리 안성농업전문학교까지 진학할 수 있었죠”

박상의 이장은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를 하면서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결국 졸업을 1년 남긴 4학년 재학 시절 학교를 중퇴했다.

“학교를 그만두고는 인천으로 올라가 술집 지배인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태권도 2단이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유단자가 흔치 않았던 때였죠. 이후 입대해 공수부대에서 전역한 뒤 정신을 차리고 평택으로 내려와 결혼을 하고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4-H회 활동을 열심히 펼치기도 했던 그는 당시 처음 생겨난 제도인 농어민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안성농전 재학 시절 전공이 축산이었기에 소를 키우며 농어민후계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인해 농어민후계자가 되는 것에 실패하면서 다시 한 번 방황을 했죠”

박상의 이장은 소를 모두 정리하고 오락실 사업을 했다.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등지에서 계절장사를 했던 그는 이후 후배와 함께 안중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홍원1리 이장이 되다

공인중개사사무소 운영을 접고 동우화인캠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박상의 이장은 퇴직 직후 주변으로부터 마을 이장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퇴직하고 1년 정도 농사를 지었는데 주변에서 권유해 홍원1리 이장 경선을 하게 됐고, 결국 이장을 맡게 됐습니다”

그는 처음 120세대, 200명이 넘는 홍원1리 마을주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3년간 단체관광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문제 등의 어려움이 생기자 전체 주민은 물론, 외지로 나간 출향인들까지 마을로 초대해 ‘만남의 날’ 행사를 기획했다.

“마을 행사이지만, 국회의원이 인사를 올 정도로 성대하게 행사를 열었습니다. 많은 출향인이 찾아와 서로 추억을 나누기도 했죠. 2년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지난해에도 행사를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개최하지 못했습니다”

박상의 이장은 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하기도 했다.

“홍원리와 석정리 일대를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넣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 체육시설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이장으로서 읍·면·동 폐기물모니터링단 활동은 물론, 이웃분쟁, 러번디자인대학 등 많은 교육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도 토지은행교육을 추진하는 등 주민 삶에 유익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주민들이 행복하게 생활하고, 또 낙후한 지역 특성상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14명으로 구성된 홍원1리개발위원회와 함께 마을을 이끌어 온 박상의 이장은 이번 임기를 마지막으로 유능한 후배에게 이장자리를 내어줄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영농법인을 만들어 주민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이라는 박상의 이장은 앞으로도 홍원1리 주민과 함께 행복한 삶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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