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어육장’은 주로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먹었던 발효음식입니다. ‘어육장’은 말 그대로 어류와 육류를 함께 넣어 담근 장으로 오랜 기간 숙성해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항아리에 육류와 생선을 켜켜이 넣은 뒤 끓여서 식힌 물에 소금을 풀어 장을 담그듯 메주를 넣어 봉했다가 시간이 흐른 뒤 꺼내서 먹습니다. 

숙성기간만 최소 1년 이상이고 10년 이상을 묵혀두었다가 꺼내기도 합니다. 어류와 육류는 음식 재료만으로 볼 때도 성질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조리법도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재료를 한데 넣어 발효시킨다니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다소 의아하게 느끼기도 하겠습니다. 

한 요리사는 ‘어육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재료를 하나로 혼합해 두었다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꺼내보면 쓴맛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각기 다른 두 개의 재료들이 자신과 다른 성질을 받아들이지 못해 서로 싸우는 것인데 그 과정이 쓴맛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성질을 잃지 않고 상대의 성질을 이기기 위해 독한 기운을 내뿜기 때문에 숙성기간이 짧을 때 어육장을 꺼내서 먹으면 이도 저도 아닌 쓴맛 밖에 나지 않는 것이지요. 

한동안 싸우는 기간이 지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서서히 자기가 가진 성질을 내려놓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성질을 내려놓고 순해지면 쓴맛도 서서히 옅어지는 기간이지요. 그 시간이 한참 흐른 뒤라야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들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를 받아들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나면 비로소 각기 다른 두개의 재료는 전혀 새로운 맛으로 재탄생합니다.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맛이 생기는 것이지요. 자신만의 독특한 성질을 내려놓고 융화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 기간을 참고 지나면 발효가 되면서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새로운 음식이 탄생하는데 그게 바로 ‘어육장’입니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는 어육장 외에도 유난히 ‘발효’와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음식의 기초가 되는 고추장, 된장, 간장, 젓갈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음식이고 술이나 빵, 식초, 치즈, 버터 등도 모두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미생물이 음식 재료와 만나 증식하는 과정은 맛과 향이 깊어지는 ‘발효’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음식이 썩는 ‘부패’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잘 발효되면 생명을 연장하는 이로운 음식이 되지만 부패하면 생명을 단축하는 해로운 음식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발효도 부패처럼 유기물이 변질된 것이지만 발효를 두고 썩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생명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잘 발효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사람, 그리고 상대와 잘 융화해서 새로운 것을 탄생하게 만드는 사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이롭게 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잘 발효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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