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자꾸 물건이 늘어난다.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 시키는 대로 물건을 사들인 결과다. 결국은 그다지 필요치도 않은 많은 물건들이 내 삶의 공간을 차지하고 만다. 물건들로 공간을 채우면 우리는 거꾸로 공간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적게 소유하는 삶의 우아함은 사라진다. 물건들을 욕망하는 것과 행복은 아무 상관이 없다. 물건이든 돈이든 많아지면 문제가 생긴다.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을 쓴 도미니크 로로는 “물건이 많으면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지 못한다. 오히려 물건이 우리를 소유하는 꼴이 된다.”고 경고를 하면서, 물질에 대한 과욕이 지닌 가장 큰 문제로 그것이 “우리 자신을 앗아가고 잠식하고 본질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점을 든다. 사람들은 왜 과욕의 유혹에 걸까? 많이 가지려는 것은 그게 자신의 존재 증명이고,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질수록 자신이 훌륭하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가치와 소유는 아무 관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

동양의 철학자들은 늘 가난을 삶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가난은 단지 돈이 없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가난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외적인 것은 적게 갖는다는 의미고, 내적인 것은 욕심이 적다는 뜻이다. 마음이 가난할 때 우리는 단순하게 살 수 있고, 욕심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 가난이 덕목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오로지 마음이 가난한 자만이 물질의 덫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은 가난하고, 더 적게 가지려는 사람은 이미 부자다. 장자는 ‘심재(心齋)’, 즉 마음의 가난에 대해 말한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 발아 들이려 기다린다. 도(道)는 오로지 빈(虛)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마음의 재(心齋)’니라.”(장자, <인간세>편) 이것은 안회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지만, 실은 장자 자신의 말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 마음을 굶기는 것이 바로 ‘심재’다. 비워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도는 빈 곳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노자도 드러내놓고 비움을 강조한다.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하라. 致虛極.守靜篤”(노자, <도덕경>) 노자 철학의 두 핵심이 나란히 나와 있다. 비움과 고요함이 그것이다. ‘허(虛)’는 비움이고, ‘정(靜)’은 고요다. ‘허’의 지극함 속에 ‘정’이 깃든다. 비움과 고요는 따로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로 움직인다. 비워야 고요해지고 고요해져야 비울 수가 있다. 노자는 왜 비우라고 했을까? 덜어내고 비워서 적게 가지면 번뇌가 준다. 반대로 많이 가지면 번뇌도 그만큼 는다. 단순한 진리다. 덜어내고 적게 갖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란 돈이 쓸데없이 새나가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돈은 삶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그 동력을 쓸데없이 낭비하면 그것을 채워 넣으려고 우리는 불가피하게 더 긴 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재물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북돋는 일, 활기차게 사는 것,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는 영혼의 점진적인 진화다.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고 사는 게 삶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오히려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곧 새로운 불행을 짊어지는 것”(도미니크 로로)이다. 법정 스님이 평생에 걸쳐 강조한 것도 비움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갈 것.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쌓아두려고 하지 말 것. 그게 ‘무소유’의 정신이다. 법정 스님이 말하는 ‘무소유’의 삶은 비움의 궁극적인 실천일 것이다. 법정은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법정,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스님이 비움을 궁극적인 가치로 강조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통찰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 역시 그의 <마음공부>에서 마음을 비우면 세상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비움은 물질과 대상에서의 자유로움이다. 물건이 흐트러져 있고, 마음이 번잡한 것은 비움에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비우지 못한 자는 채우지도 못한다. 빈자리가 없는데, 어디에 채우고 쌓아둘 것인가? 비우고 덜어내는 것은 인생을 더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비우고 단순해질 때 더 본질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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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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