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민규 지음/예담
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 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 해도 결국엔 문득 그 방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전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지만, 그래도 그 방문에 몸을 기대면… 기대어 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죠. 방문을 활짝 연 채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도 있을 거예요. 언제든 손이 닿는 곳에, 혹은 현관과 마루 정도를 지나면 곧 방문을 열 수 있는 여자도 있을 테고…(생략)
손에 든 촛불이 꺼져간다 해도, 결국 꺼지기 전에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더라도 말이죠. 그 길이 너무 멀어… 그리고 점점 발걸음이 뜸해지는 여자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그런 방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여자가 있는 거예요. 줄곧 나 자신이 그런 여자라고 생각해 왔어요.

외모지상주의(Lookism). 얼굴 생김새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용모에 따른 차별.
흔히들 우리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있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고들 말한다. 티브이에서는 늘씬한 몸에 조각으로 빚은 듯한 얼굴들이 말을 하고 춤을 추며, 길거리에서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딘 여자들이 붕대를 칭칭 감고 지나가곤 한다. 이제 아름다움은 순수했던 그것이 아니라 돈과 기술로 만들어지는, 가진 자들이 영위할 수 있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화려한 겉모습으로 사람을 꾀었다가 금새 시들어버리는 그런 가치. 비영속적인 것.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작가가 아름다움을 보는 시선은 그렇듯 비판적이며, 나아가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나누는 도구이기도 하다.
아름답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린 인기배우 아버지와, 한결같이 사랑했고 헌신했지만 결국은 버림받은 못생긴 어머니. 스무 살의 ‘나’에게 아름답다는 것은 배신과 슬픔을 상징한다.
그런 ‘나’는 백화점 아르바이트에서 늘 비관적인, 잘생긴 요한과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못생긴 그녀를 만나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염증과 함께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그녀를 ‘나’는 사랑하게 되고, 청춘의 시작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멘토가 되어준 요한과 함께 셋은 친구가 된다. 그들이 있었기에 충만했던 1980년은 흘러가고, 1999년 작가로 성공한 ‘나’는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들으며 그때의 추억을 되살린다.
언제부터 겉모습만을 보게 된 걸까?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 지도 모르는 채로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겉모습만을 동경한다.
막연한 소수의 부와 권력을 우러러보듯, 화려한 표면적 美 만을 추종하는 사이에 못생기며 가진 것 없는 다수는… 우리들은… 소외되고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다수의 우리들은 스스로 죽은 왕녀를 위한 시녀들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못생겼으니 사랑받을 가치도 없다며 스스로 떠나버린 ‘그녀’가 안타까웠지만 끝끝내 작품속 ‘나’가 그녀에게 느낀 것은 사랑이 아닌 연민일 거라고 단정지어버린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외모 추종자임을 고백한다. 루키즘에 빠진 세상 속, 평범한 여자로 살아간 다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해야하고 어쩌면 상처 입을 수 도 있다는 걸 알기에 이 책이 더없이 위로가 되는 지도 모르겠다.
혹시 지금, 죽은 왕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옆에 있는 진짜 사랑을… 또는 자신의 가치를 보지 못한 시녀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김정 사서
평택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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